죽음도 미리 배워 두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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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에게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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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바처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그래서 죽음 복도 타고나야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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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큼 살다가 명이 다해 가게 되면 병원에 실려가지 않고 평소 살던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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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그라지는 잿불 같은 목숨인데 약물을 주사하거나 산소호흡기를 들이대여 연명의술에 의지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큰 고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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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평생 험난한 길을 헤쳐 오면서 지칠대로 지쳐 이제는 푹 쉬고 싶을 때흔들어 깨워 이물질을 주입하면서 쉴 수 없도록 한다면 그것은 결코 孝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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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술로도 소생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조용히 한 생애의 막을 내리도록 거들고 지켜보는 것이 자식들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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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있으면 평소 낮 익은 생활공간에서 친지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삶을 마감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병원에서는 존엄한 인간의 죽음도 한낱 업무로 처리되어버린다. 마지막 가는 길을 낯선 병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맞이한다면 결코 마음 편히 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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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도 그 사람다운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이웃들은 거들고 지켜 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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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찍부터 삶을 배우듯이 죽음도 미리 배워 둬야 할 것이다.언젠가는 우리들 자신이 맞이해야 할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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