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 꽃/모하비사막의 야생양귀비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
양귀비꽃 옛날 두메 산골 어느 한 마을에 이상하리 만치 남녀노소 할 것없이 서로 몹시 아끼고 사랑하는 한 가정이 었었다. 험하고 힘든 일앤 남먼저 다투어 나서고 가볍고 손쉬운 일과 색다른 음식에는 서로 떠밀고 양보하여 그 극진함이 더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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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을 들은 지하염라국의 염라대왕은 어느 날 인간세상 그 집의 허실을 알아보리라 작심하고 죽음의 사자에게 호출장을 써 주면서 그 집 식구 하나를 잡아오라고 명을 내렸다. 죽음의 사자는 즉시 그 집 호주를 찾아 호출장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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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장에는‘서로간에 상의한 후 즉시 한 사람을 보내어 뒷산 촉촉바위 아래 연당물에 몸을 던져 염라지국에 대령입적할지어다.’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집 식구 중의 한 사람이라 했으니 더 말할 것 없이 내가 가야지!’이렇게 생각한 영감님은 마음을 정한 후 작별차로 먼저 마누라를 찾아갔다. 그러자 듣고 있던 마누라는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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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영감, 물론 영감님의 말씀대로 좇는다면 으레 춘추가 높으신 영감부터 저승으로 가셔야 하겠지만 가세로 보아 영감님은 가문의 호주요, 지존이신데 어찌 경솔하게 이 세상을 저버리려 하십니까요. 그러니 이번 걸음에는 내가 나섬이 천만 번 지당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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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영감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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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부인. 그런 게 아니요. 나는 이미 환갑이 넘도록 살며 남자 대장부라 안팎없이 갖은 존대와 공대를 다 받으면서 한 세상 재미를 마음껏 누린거나 다름없으나 부인은 여자의 몸으로 위로는 시부모를 공경하고 남편을 섬기고 또 아래로는 오롱조롱한 자식을 낳아 가르치느라 온갖 풍상고초를 다 겪었은즉 그 고생을 어찌 한 입으로 다 이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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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자손들을 거느리고 무사히 잘 지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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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예요 영감, 난 이젠 며느리에 손자까지 다 보았으니 이 세상을 등진다 한들 무슨 소원이 더 있겠수. 하물며 우리 가문에 내가 없어도 무방하거늘 더 말씀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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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마누라는 호출장을 와락 빼앗았다. 호출장을 빼앗은 마누라는 그 걸음에 신을 신고자 마루로 나갔다. 이 때 이 일을 알고 좇아나온 며느리는 시어머니 손에서 호출장을 살짝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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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이 먼저 저승으로 가시다니 웬말씀이세요. 한평생을 고생 속에 보내신 어머님은 아직 못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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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친 며느리는 얼른 옷매무새를 고쳐하고 쌕쌕 단잠에 든 어린것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 준 후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일하던 남편은 뜻하지 않은 아내의 곡소리에 놀라 뛰어들어왔다. 그는 사연을 알고 부인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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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예로부터 부부일신 종신이라 했는데 당신이 가다니 웬말이요? 하지만 이미 염라대왕의 사자가 잡으러 온 이상 당신이 가면 어떻고 내가 가면 어떻소? 그러니 차라리 내가 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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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내는 좀처럼 자신의 뜻을 굽히려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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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이란 한 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길이예요. 당신은 이 집의 외독자이고 난 출가입적한 외인이니 어쨌든 내가 가야 옳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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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의 손에서 기어이 호출장을 빼앗아 가지고 사자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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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당신은 어린것까지 딸린 몸인데 당신이 없으면 장차 우리 가문의 후손을 누가 알뜰살뜰히 돌보며 잘 키워 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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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역시 만만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도리어 어느새 남편의 손에서 호출장을 도로 빼앗아 쥐고 시부모님을 찾아가 하직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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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어머님! 이 불효자 먼저 떠나가오니 아무쪼록 백세무강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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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남편을 보고선 사뿐히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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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 부득이한 사정으로 애당초의 백년가약을 저버리고 내 먼저 떠나가오니 슬퍼마시고 조만간 다시 장가드시어 지성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자애로 어린 것을 키우시며 부부 서로 금실자락 누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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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고 나서 분연히 집을 나서는데 두 눈에서는 줄 끓어진 구슬마냥 눈물이 비오듯 했다. 며느리가 죽음의 사자를 따라가는데 때마침 산나물 뜯으러 갔던 꽃 같은 시누이가 집으로 총총히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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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는 올케의 수상한 행색에 저으기 의심이 나서 어디로 황황히 가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올케는 할 수 없이 자초지종 사연을 일일이 이야기하면서 작별을 고했다. 그 말을 듣고난 시누이는 다짜고짜 달려들어 올케의 손에서 염라대왕의 호출장을 빼앗아 쥐고 사자를 재촉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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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 ! 아무리 그러기로 이제 한창 피는 이팔청춘 꽃나이인 시누이가 먼저 저승으로 가야 옳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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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의 말에 시누이는 맺고 끓 듯 단호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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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 나야 비록 꽃다운 청춘이라지만 아직은 남편도 어린것도 시부모도 없는 혈혈단신이 아니어요. 위로는 섬겨드려야 할 시부모가 계시고 남편이 있고 아래로는 귀동자까지 달린 형님에게 비하면 내가 가는 것이 천만 번 지당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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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사신을 재촉해 바람마냥 뒷산으로 떠나갔다. 그리하여 시누이가 뒷산 촉촉바위 연당물에 몸을 던져 저승으로 갔다. 이 때 이제나 저제나 하고 초조히 기다리고 있던 염라대왕은 뜻밖에도 하고많은 식구들을 다 버리고 젊디 젊은 처녀가 온 것을 보고하고 괴이쩍어 처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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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모를 일일진저. 연세 높은 식솔들은 모두 다 버리고 하필 출가도 아니한 새파란 처녀가 왔더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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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처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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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지엄하옵신 염라대왕은 들어 보세요. 인간세상 한 가정을 놓고 보면 아버님은 지존이요 어머님은 총목이요 오빠는 기둥이요 올케는 주부요 어린 것은 희망인데, 때도 안 되어 어이 지금 섣불리 온단 말입니까? 그래서 제가 온 것으로 아뢰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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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염라대왕은 그만 목이 꺽 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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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인간세상 한 일가의 인심은 과연 듣던 바와 조금도 틀림이 없구나! 그렇게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하는데 어찌 동짓달 돌같이 차디찬 심사지닌 우리 염라지국이라 한들 무심히 할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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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감탄한 염락대왕은 다시 분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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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한 처녀야, 너는 양춘가절 호시절이라 어서 인간세에 다시나가 부모봉양 잘 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가정화목 도모하다가 조만간 심지바른 짝을 찾아 한평생을 고이고이 지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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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은 곁의 대신에게 부탁하여 그 무슨 작은 짐꾸러미 하나를 내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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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거라, 아직 인간세상에는 없는 진귀한 씨앗을 주노니 이제 이것을 뜰과 텃밭에 심어 가용이 쓰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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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 심는 방법과 사용처를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그 시누이 처녀는 염라대왕에게 백 배 사례한 뒤 다시 소생신의 인건을 받아 인간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염라대왕이 주던 씨앗을 뜰밭에 정히 심었다. 톱날 같은 타원형의 잎사귀가 줄기를 끌어안고 부쩍부쩍 자라더니 그것이 가을이 되자 높이가 1미터 이상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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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희고 빨갛고 보라빛을 띈 꽃이 눈부시게 아름답게 피어났다. 그 꽃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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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염라대왕이 가르쳐 준 대로 아직 꽃이 미숙일 때 그것의 아래를 칼로 살짝 베어 진을 받아 말려 두었다가 배아픈데 먹고, 머리 아픈데 먹고, 모진 상처에 먹고 발랐다. 그랬더니 모든 병이 즉시 가뭇없이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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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온 가정 식솔들은 더더욱 화목하고 즐겁게 잘 살아갔다고 한다. 또 이로부터 이 꽃이 널리 재배가 되었는데 이것이 다름아닌 오늘날의 ‘양귀비꽃’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