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戰 상징 사진 40주년
두 주인공의 소회
기자: "소녀 숨졌다면 나도 자살했을 것"
킴 푹: "사진, 이젠 선물로 생각 "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네이팜 소녀' 킴 푹(49)의 사진이 오는 8일 탄생 40주년을 맞는다. 아홉 살 소녀가 벌거벗은 채 절규하며 1번 도로를 따라 피신하는 이 흑백 사진은 후잉 콩 우트(당시 21세) AP통신 기자가 1972년 6월 8일 월맹군과 월남군이 접전을 벌이던 남부 짱방지역 카오다이 사원 근처에서 포착한 것이다.
후잉 콩 우트 AP통신 기자가 1972년 촬영한 사진.
AP통신은 강렬한 사진 언어의 두 주인공을 인터뷰한 내용을 둘의 각별한 인연과 함께 1일 보도했다. 킴은 "그때의 기억으로부터 탈출하려 했지만 그 사진은 오래도록 나를 놔두지 않았다"고 했다. 월남군의 네이팜탄 폭격 후유증으로 극심한 두통과 화상에 시달렸지만, 공산 정권은 제대로 치료해 주지 않고 의사가 되려던 꿈을 꺾었으며 자신을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49세 된 소녀
킴 푹이 벌거벗은 채 네이팜탄 폭격을 피해 달아나는 이 장면은 베트남전의 비극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 아래쪽은 킴 푹이 2010년 강연을 위해 영국을 찾았을 때 모습이다.
AP뉴시스 데일리메일 우트 기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킴이 달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돕지 않아 그녀가 숨졌다면 자살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찰나의 촬영을 마친 뒤 소녀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내달렸고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를 설득해 치료를 맡겼다.
우트는 사이공(현 호찌민) 사무실로 돌아가 훗날 퓰리처상을 선사한 걸작을 현상했다. 나신 사진을 다루지 않는다는 AP통신 내규에 부딪혀 사장될 뻔했던 이 사진은 '규칙을 어길 만한 가치가 있다'는 현지 사진 에디터의 판단에 따라 빛을 보았다.
킴은 쿠바 유학 중이던 1989년 관광객으로 온 베트남 남성과 만나 3년 뒤 결혼했고 현재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서 아들 둘을 두고 그토록 염원했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둘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킴은 우트의 도움으로 1999년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여전히 AP에서 근무 중인 우트는 "킴을 '내 딸'이라 부른다. 그 사진은 그녀를 구했고 시험에 들게도 했고 마침내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킴은 "이젠 그 사진을 위대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영석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