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이 물자 부족으로 허덕일 때의 일이다.
소련 사람들은 모든 물건을 줄을 서야만 겨우 살 수 있었다.
한 소련인이 외국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해서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청소를 하던 그는 하나밖에 없는 빗자루를 부러뜨렸다.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던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 외국 친구들 몇 명이 도착했다.
친구가 우는 모습에 당황한 그들은
사정을 듣자 위로를 했다.
부유한 일본인은
“빗자루 하나가 몇 푼이나 한다고 그래.
다시 하나 사면되는데 뭘 그렇게 슬퍼하는 거지?”
라고 했다.
법률을 만능으로 믿는 미국인은
냉정하게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조악한 빗자루를 생산한 회사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면 돼.
패소해도 너는 소송비용을 낼 필요가 없어.”
낭만적인 프랑스 친구는
엉뚱한 논리로 위로를 했다.
“나는 자네가 빗자루를 그냥 부러뜨릴 정도로
힘이 좋다는 사실이 너무 부러워.
나 같은 사나이의 부러움을 사는 판에
울기는 뭘 울어?”
실용적인 독일 친구도 한마디 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우리가 같이 연구하면 빗자루를 원래처럼
붙여서 사용할 수 있을 거야.
틀림없이 방법이 있다니까.”
미신을 잘 믿는 타이완 친구도 거들었다.
“안심해!
빗자루가 부러진 것은
재수 없는 일이 생길 거라는 징조가 아니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불쌍한 소련인이
울면서 푸념을 했다.
“나는 너희들이 말한 이유들 때문에 운 게 아니야.
나는 내일 가게 앞에 줄을 서서
한나절을 기다려야만 빗자루를 살 수 있어.
그러니 너희들이랑 같이 놀러 갈 수가 없단 말이야!”
소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쉽게 간과하는 사실은
서로의 처지를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상이몽인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황당하고 우스운 결론으로 치달을 수 있다.
즉 각자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름대로
주관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나 사람을 이해해야 할 때는
자신의 생각은 한편에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역지사지를 하면 많은 일들이
놀라울 정도로 쉽게 풀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