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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능욕 당한 논개 이야기논개는 진주목의 관기로 1593년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이긴 왜군들이 진주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일 때 왜장 게야무로 로쿠스케를 남강변으로 유인하여 끌어안고 강물에 투신하여 순절하였습니다.논개는 진주성을 지키던 장수의 아내였고, 진주성이 함락되어 남편이 죽게되자 논개는 기생복장을 하고 왜군장수를 죽이려고 계획하고 실천했다.
그러나 기생으로 오인해서 임진왜란중 충신, 효자, 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도 이름이 오르지 못하고 오랜 세월동안 목격자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진주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알려져오고 매년 조촐하게 추모제가 열려왔었습니다.
경종1년 (1721) 공식적으로 비변사에서 그녀의 순국사실을 국가가 인정하고 영조16년(1740)년 사당이 의암부근에 세워지고 지금까지 매년 논개의 추모제가 열립니다.
여기까지의 논개 이야기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거의 알고있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수백년전 자신의 어머니의 나라를 침략해 강탈한 왜장과 함께 목숨을 던져버린 논개가 한참동안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일본에서 능욕당하고 있었던 사실을 아는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의 죽음은 그러나 명성에 걸맞지 않았다. 진주성 싸움의 승리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논개'라는 조선여인에게 죽임을 당한것이다'우에쓰카는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참으로 기가막힌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그는 73년 처음으로 진주를 찾아가 자신은 논개를 존경하는 일본인이라는 마음을 비추면서 한-일간 역사적 화회와 교류, 영혼들의 원풀이라는 주장으로 진주에서 논개와 게야무라의 넋을 건져 이를 일본으로 모셔가는 의식을 치룬후 남강에 국화를 뿌리고 1천마리의 종이학을 띄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히코산에 게야무라와 함께 논개의 무덤을 만드는데 이르렀습니다.그는 논개가 순국한 진주에서 나무, 흙, 모래 그리고 돌을 가져다 게야무라 사당옆에 논개의 무덤을 꾸몄습니다. 또 논개의 영정과 똑같은 영정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당시 진주시에서는 그의 말도 안돼는 주장을 믿으며 흡족해 하고 적극 협조했다고 합니다.
일본 보수원에 있던 게야무라와 나란히 걸린 논개의 영정그뒤 그는 논개를 게야무라와 영혼결혼식을 시키고 그의 부인과 처제의 영정옆에 첩으로 세워놓았습니다.이에따라 일본에서는 '전쟁중에 게야무라와 논개가 만나 전쟁이 끝난후 논개는 그를 따라 일본까지 따라와서 함께 해로하다 죽었다' 는 기가막힌 이야기까지 만들어졌고 논개는 일본에서 '부부금실을 좋게 해주는' '섹스의신' 으로 사람들이 모시게 되었습니다.이런 어이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줄도 모르고 당시 진주시에서는 우에쓰카에게 감사장까지 선사했다는 것입니다.뒤늦게 시민단체에서 알아내어 이 말도 안되는 사건을 이슈화 시켰고 정부와 시 당국에서는 영정과 우에쓰카씨가 진주에서 가져간것들을 모두 회수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손들의 무관심 속에 잠시이지만 그의 모국을 짓밟았던 나라의 후손에게 다시 능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먼 시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도 또라이트같은 매국 친일단체가 버젓히 활개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기목숨과 맞마꿔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훌륭하신 분들이 너무나 많은 이 나라 사람들을 농락하고 자신의 이익부터 챙기려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 너무나도 많습니다..이런 엉터리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당장 주변에 이런 일들이라도 우리가 나서서 알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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