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단계

글 두레 2011. 2. 25. 12:44

글 찾기(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지혜의 단계

필요한 것은

자각 못한 부정적 감정들과 접촉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 감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 있으면서 우울하다는 걸 의식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우울했는가를 비로소 이해하는 때는 기쁨을 접할 때뿐입니다.



검진되지 않은 암을 치료받을 수는 없습니다.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농장의 바구미들을 퇴치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한 첫째 일은

부정적 감정들에 대한 자각입니다.

무슨 부정적 감정?

예컨대, 음울. 여러분은 음울하고 침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자기 혐오감이나 죄의식을 느낍니다. 삶이 속절없다고, 무의미하다고 느낍니다. 상심하고, 신경질을 부리거나 긴장을 합니다.



그런 감정들을 먼저 만나십시오.



다음은 그

런 감정이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이지

현실 안에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건 매우 자명한 얘긴데.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 총장들도 그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학교

생활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어요.

그밖의 온갖 것을 가르쳐 주었죠.

"나는 제법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그 교육을 극복하는 데에 여러 해가 걸렸다"고

어떤 사람이 말한 것과 같은 얘기죠.아시다시피 영성은



바로그런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버리십시오.

사람들이 가르쳐 준 온갖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십시오.

부정적 감정들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현실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현실을 변화시키려 하기를 멈추십시오. 그건 미친 것입니다!



비가 와서 내가 소풍을 망쳤다고 합시다.누가 기분이 나빠집니까?



비입니까, 나입니까?

무엇이 부정적 감정을 일으킵니까? 비입니까, 나의 반응입니까?



무릎을 탁자에 부딪쳤다 했을 때 탁자는 잘못이 없습니다.

탁자는 생긴대로 탁자 노릇 하느라고 바쁘죠.

아픈 데는 무릎이지 탁자가 아니죠.

신비가들은 늘 우리에게 현실이란

모두 옳다고 말해 주고자 합니다.

현실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인류를

이지상에서 치워 버려도 생명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 사랑스러움과 공격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자연은존속할 것입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어요?

전혀 문제가 없죠. 여러분이 문제를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이 바로 문제인 겁니다.

"내것"과 동일화했고 그것이 문제인 겁니다.

그 감정들은 여러분 안에 있지 현실에 있지 않습니다.



다른사람을 바꿔 놓으려 하기를 그만두십시오.

우리는 모든 시간과 정열을 외적상황들을

바꾸려는 데에, 배우자·사장·친구·적, 그밖의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는 데에 허비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지상의 어느 누구도 우리를 불행하게 할 힘은 없습니다.

지상의 어떤 사건도 우리를 혼란시키고 상심케 할 힘은 없습니다.



어떤 일,

어떤 조건,

어떤 상황도,

혹은 어떤 사람도,

아무도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정반대 얘기를 했죠.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뒤죽박죽인 겁니다.



그래서 잠들어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자명한 것입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 무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대한 마이스터 엑크하르트는 이것을 매우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하느님께 도달하는 과정은

영혼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무언가를 덜어내는 것이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무엇을 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언가를 덜어내십시오.

그러면 해방됩니다.

여기서

어느 아일랜드 탈옥수가 생각납니다.

그는 감옥담 아래로 굴을파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로 뚫고나옵니다.

바깥 세상에 나오자

그는 물론 하도 기뻐서 더는 참지 못하고 외칩니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I'm free).

그러자 한 꼬마 소녀가 그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말합니다.

"그건 아무것도 아네요. 난 네 살이라구요"(I'm four).

다음 단계는 그 감정과 결코 동일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와 무관합니다.

여러분의 본질적 자기를 그런 감정에 따라 정의내리지 마십시오.



"내가 우울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우울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좋습니다.

우울이 저기 있다,

침울함이 저기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좋아요



그러나

내가 침울하다고 말하는 건안됩니다.

그건

그 감정에 맞춰서 자신을 정의내리는 겁니다.

그건 환상입니다. 착오인 겁니다.

바로 지금 저기 우울이 있고

바로 지금 저기 상처받은 감정이 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홀로 놓아 두십시오.

지나가고 말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모든 것이.

우울한 기분들과 짜릿한 감동들은 행복과 무관합니다.

그런 것들은 진자의 왕래 운동에 불과합니다.

신나고 짜릿함을 추구한다면 우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약물을 원합니까?

중독을 각오해야 합니다.

진자 운동의 한 번 끝은 다음 번으로 이어지니까요.

이것은

"나"와 무관합니다.

행복과 무관합니다.

"내것"이죠. 이 점을 명념한다면,

일천 번 되뇌인다면, 이 세 단계를 일천 번 거친다면.

목표에 도달할지, 단 세 번도 필요 없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법칙은 없어요.

그러나

일천 번이라도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일생 일대의 발견을 이룰 것입니다.

알라스카의 황금 광산 따위는 집어치우십시오.



사물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이 단계에서는

이해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아니 오히려 딱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죠.

의사를 찾아가서

자기가 왜 아픈지를 묻는 환자를 상상해 보십시오.

"좋습니다.

댁의 증상을 알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지 아십니까?

댁의 이웃에게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그 말씀을 들으니 한결 기분이 낫군요."

그 황금으로 무얼 하려는 겁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살 수 없습니다.

불행한데도 황금을 발견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여러분은 왕입니다.

왕비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롭습니다.

수용받든 거부당하든 마음 쓰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러나 저러나 다를 게 없는 겁니다.

심리학자들은 소속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합니다.

실없는 소리!

왜 남에게 소속되려 합니까?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친구에게 들은 얘긴데,

추방이 극형이 되는 아프리카 부족이 있답니다.



누가 뉴욕에서 쫓겨난다 해도 어디 가서 살든 죽지는 않겠죠.

그런데 그 부족에서 추방된 사람이 죽는 건 어찌된 일일까요?

인간성의 공통된 어리석음을 그도 지녔기 때문입니다.

소속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추방된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전혀 달라지는 걸까요?

그는 자기가 소속될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던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어떤 단체에도 소속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사랑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받아야 한다고 누가 그랬습니까?

필요한 것은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사실상 내게 이야기하고 있는 건 성공하고 싶다,



칭찬받고 싶다는 겁니다.

온갖 하찮은 원숭이들의 추종을 받고 싶다는 겁니다.


삶을 낭비하고 있는 거죠."깨어나십시오!"

그런 건 필요없습니다.

그런 것이 없이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황당하잖아요?

그러나 그게 우리 모두가 하는 짓들입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으레 누군가 변하면 자기 기분이 나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잠들어 있어서 고통받고 있건만,

"다른 사람이 변한다면 삶이 얼마나 멋질까.

내 이웃이, 내 아내가, 우리 회사 사장이



변한다면 얼마나 살 맛이 날까"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사회는

이런 말을 듣기 좋아하지 않겠죠.

눈을 뜨고

이것을 이해할 때 무서워질 테니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요?

그런 사람은 남들이 필요없습니다.

남들의 비판에 위협받지 않습니다.

남들이야 자기를 두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연줄을 모두 끊어 버립니다.

이미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무서운 사람이죠.그래서

"우리는 그를 제거해야 한다.그는 진리를 말한다.그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는 인간답기를 그만뒀다" 하는 겁니다.

인간답기를 그만뒀다고!

저런!

이제야 참 인간이 되었는데!

그는 종살이를, 그의 감옥을 뚫고 나온 것입니다.

어떤 사건도 부정적 감정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부정적 감정을 정당화할 상황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신비가들이

목청을 돋우어 우리에게 해 온 이야기가 이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부정적 감정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힌두교 성전(聖典) [바가바드 기타]에 보면



크리슈나 신(神)이 아르유나에게

"전투의 열기 속에 뛰어들되



너의 마음은 신의 연꽃 발치에 머물게 하라"

고 말합니다.

절묘한 말입니다.

/옮긴 글














'글 두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국인이 본 한글  (0) 2011.02.27
세상살이  (0) 2011.02.27
지나고 보면 모두가 그리운 것뿐인데  (0) 2011.02.25
환희  (0) 2011.02.23
낙원 길  (0) 2011.02.22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