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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를 꾸짖은 황희

황희(1363 - 1452)가 영의정 자리에 있을 때 김종서(金宗瑞)는 병조와 호조의 판서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황희는 김종서가 한 가지 일이라도 잘못을 하면 그를 불러서 곤욕을 주거나 호되게 야단을 쳤다. 그리고 만약 김종서를 벌주지 못했을 경우에는 대신 하인을 불러다가 볼기를 치기도 하고, 그의 부하 관리를 잡아다가 옥에 가두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되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였다.김종서 자신도 남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분이 자신에게만 혹독하게 대하니 입장도 난처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다.

이에 맹사성(孟思誠)이 황희에게 물었다. “김종서는 미래가 촉망되는 유명한 판서인데 어찌 그를 이렇게 심하게 대하십니까?”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김종서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오. 그는 재주가 뛰어나고 기운이 넘쳐서 너무 과감하게 일을 밀어붙이고 있소. 후일 그는 나와 같은 벼슬자리에 앉게 될 것인데, 그런 과감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일을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잘못될 것이 틀림없소. 그래서 그의 기운을 꺾고 그 뜻을 가다듬어서 신중한 마음을 갖게 함으로써 일을 처리할 때 경솔하게 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나의 뜻이오, 내 그에게 곤욕을 주려는 것은 아니오.”

맹사성은 그 말을 듣고서야 황희의 깊은 뜻에 탄복하였다. 후에 나이가 많아 그는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면서 임금에게 김종서를 정승으로 추천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였다.

* 김종서(金宗瑞 : 1390~1453) 조선 단종 때의 충신. 호는 절재(節齋). 그는 6진을 개척하여 두만강으로 국경을 삼았다. 그 후 수양대군은 정권을 잡기 위해 그를 죽였는데, 이때부터 단종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 맹사성(孟思誠 : 1360~1483) 조선 세종 때의 문신. 호는 고불(古佛). 그는 성질이 청백 검소하여 공사를 분별하였고, 음률을 좋아했는데 특히 퉁소를 즐겼다./박재형, 해동소학 선행(善行 : 훌륭한 행실)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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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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