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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우산 두 개를 사서 돌아오며 은서를 보니 그녀는 무릎에 얼굴을 푹 파묻고 강만 보고 있다.
세는 우산을 펴서 은서의 손에 쥐여주고 자신도 우산을 펴 썼다.
빗발은 굵어서 여기저기 벌써 빗물이 고였다.
앉아 있는 곳이 시멘트 바닥이 아니고 흙이었으면 옷에 다 흙물이 번졌으리라.
얼마가 지나서 은서가 세를 바라봤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무슨?˝
˝어떤 여자가 …… ˝
˝ …… ˝
은서는 얘기를 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세는 그런 은서를 잠깐 쳐다보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떤 여자가 어쨌어?˝
불이 붙은 줄 알았는데 담뱃불은 그냥 꺼져버렸는지 빨아도 불꽃이 일지 않았다.
˝아무 얘기도 아니야.˝
˝그래도 해봐˝
˝그냥 어떤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비가 오는 날 그 남자를 만났는데 남자가 가게에서 우산을 두 개 사 오더래.˝
˝ …… ˝
˝그것이 그렇게 슬프더래.˝
은서는 얘기를 끊었다.
세는 들고 있던 불이 꺼진 담배를 저만큼 빗속에 내던지고서 파란 비닐우산 위로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대로 미끄러져 아래로 다시 떨어지는 걸 힘없이 쳐다보고 있다.
그게 왜 슬프냐고 세는 되물을 수가 없다.
은서의 대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세는 그저 가슴이 벅차 왔다.
˝너무 슬퍼서 그 여잔 그 남자와 헤어졌대.˝
빗발이 점점 더 굵어졌다.
은서의 치마, 세의 바지, 각자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은서의 핸드백, 세의 가방이 빗물에 젖었다.
˝비 오는 날 애인이 우산을 두 개 사서 그것이 너무 슬퍼서 헤어졌다? 재밌지?˝
대답 없는 세를 가만 건너다보며 은서가 피식 웃는데 비닐우산이 바람에 휙. 몰려 한쪽으로 일그러졌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 中에서-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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