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꼬마 녀석을 데리고 쇼핑하려 했던 것이 모험이었다.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지하 식품부부터 가정용품 판매대가 있는 5층까지 볼일을 보자면 부지런히 움직여도 2시간은 걸릴 텐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일 층 매장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순전히 녀석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속옷 판매장에서 녀석의 팬티를 고를 때만 해도 그렇다. 녀석이 입을 팬티이니 다섯 개의 색깔 중 두께를 고르라 하였더니 하나하나 뒤집어보고 나서는
˝에이 이런 것 말고 아빠 것처럼 고리 달린 팬티 사줘요!˝
라고 말하며 떼를 쓴다.
˝고리 달린 팬티?˝
영문을 모르는 직원은
˝어디에 고리가 달렸는데요?˝
˝신제품인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꺼내놓았던 팬티를 다시 집어넣으려 했다.
녀석은 직원의 혼잣말 같은 물음이 자신에게 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아주 성실한 답변을 해주었다.
˝있어요! 우리 아빠 팬티는요~고추 묶어두는 고리도 있어요!
고추를 묶어 두면요. 건강에 좋데요!˝
크~~~
언젠가 남편이 모 기업이 무료로 주었다면서 포장지에 싸인 네모난 상자를 들고 왔길래 녀석과 내가 기대를 하며 뜯어봤더니 그 속엔 팬티 두 개 들어있었다.
˝에이~~팬티잖아? 난 또 뭐라고?˝
다소 실망에 찬 소리를 하며 일어서는데 녀석은 예사 팬티와는 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와~~이건 고리 달렸다!˝
˝고리?˝
나 또한 처음 보는 고리 달린 팬티이지만 그 팬티엔 왜 고리가 달려있어야 하는가에 관해 묻는 녀석에게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해주어야 했고 그 뜻을 알고 있는 녀석은 직원에게 친절히도 설명해 주었다.
웃음을 속으로 삭이느라 힘들어하는 직원에게 꺼내 놓았던 팬티를 싸달라고 하며 총총 점포를 빠져나왔다.
남편의 혁대를 고르는데도 느닷없이 녀석이 남자 직원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저씬 팬티 치수가 어떻게 돼요?˝
알고~~~~~~~~~
말을 못 하고 허허 웃던 직원이
˝넌 몇 치순데?˝
라며 되물으니
˝나는요 60치수고요~ 우리 아빠는 100 크기고요~ 우리 엄마는 90치수에요~~˝
줄줄, 막을 틈도 없이 쏟아붓는 녀석의 말에 아예 질려버린 나는 또 어떤 말을 할지 모르는 녀석을 데리고 서둘러 혁대를 사 들고 고개도 못 들고 빠져나왔다.
호기심이 많은 건 머리가 좋아서리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내 눈에 초점을 맞추려고 고개를 젖히며 ˝엄마!˝라는 단어를 따발총같이 연발하며 이것저것 신기해하며 꼬치꼬치 물으면 별 희한한 것에도 일일이 호기심에 내심 대견해하며 입에 침까지 튀겨가며 일일이 대답해주기도 했지만,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되는 내 조바심은 더는 자상한 엄마 되기를 포기했다
시아주버님께서 서울에 볼일이 끝나고 오후에 잠시 들리신다고 전화를 주셨기에 조카들한테 보낼 선물도 살 겸 찬거리도 살 겸 나오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쇼핑을 하다간 하루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엄마아!˝
녀석이 벌써 세 번째 날 불렀지만 못 들은 척하며 녀석의 팔을 잡아끌었더니 덕분에 지체할뻔한 녀석을 유혹하고 있던 잡화판매대를 무사히 지나칠 수 있었다. 슬쩍 비쳤다가 사라진 화려한 잡화판매대에 미련을 못 버리고 녀석이 힘으로 버티기 시작했다. 내 발에 제동을 걸어보려고 있는 힘 다 주며 버티기도 하고, 손가락을 비틀며 꼬집기도 하고, 자기 키만 한 내 다리통을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게임은 게임이다. 이길수밖에 없는 내 처지고 보니 치사하지만, 머리 굴리기에 들어갔다.
고사리 같은 녀석의 손을 단단히 움켜쥐며 말했다
˝피자 사줄까?˝
녀석의 작은 머리를 점령하고 있던 호기심들을 깡그리 잊게 하는 데는 그저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피자 이상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안 그래도 배가 고플 때인지라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입맛을 다시더니 녀석의 머리는 자동으로 아래위로 흔들렸다.
녀석은 뛰다시피 내 걸음에 보조를 마치고 따라왔다.
´피자헛´은 꼬마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녀석이 피자를 먹는 동안 신속하게 쇼핑을 마무리하자는 속셈으로 녀석을 의자에 앉히고 소매를 걷어주며 내가 말했다.
˝너! 여기서 피자 먹고 있을래? 엄마 얼른 다녀올게. 응?˝
혹, 싫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아주 부드럽고 달착지근하게 물었더니 녀석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어디 가는데?˝
하고 물으며 약간 두려운 기색을 한다.
˝응. 너 먹고 있을 때 화장실 다녀올게. 그런데. 이건 비밀이니까 귀 좀 빌려줄래?˝
항상 녀석은 비밀스러운 말을 한다고 하면 좋아했다. 아마 둘만의 세계를 만든다는 비밀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을 반짝이며 귀를 바짝 가져다 대는 자세가 정말 귀여워 귓불을 살짝 깨물며 입바람을 불어넣으며 간지럽게 들리도록 속닥거렸다. (있잖아. 냄새나는 거 말이야 그거 마렵거든? 엄마 창피하니까 비밀 지켜줘야 해?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먹고 있어 그동안 살짝 다녀올게…. 알았지? )
귓속을 간지럽히는 내 입바람이 간지러웠는지 자지러질 듯 킥킥거리면서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귀를 잡아다가 녀석도 귓속말로 대답한다.
˝알았어! 엄마~ 나 아무한테도 얘기 않을게.˝
아무 데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변이나 대변이 마려워 해결하기 위해 엄마를 괴롭혀 온 녀석은 오늘 엄마가 자기처럼 은밀하게 화장실 이야기를 꺼내며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무척 재미있어하는 표정이었다. 제법 어른스러운 표정 흉내를 내면서 한마디 한다.
˝ 빨리 와야 해!˝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된다며 다짐을 받고 피자 두 조각과 음료수를 녀석의 앞에 놓아주고 총총 위층으로 향한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빨리빨리. 시간이 없었다 내일이 어린이날이 선물도 사야 하고 어머니께 드릴 건강 팔찌도 사야 하고 이것도 저것도 사야 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쇼핑을 끝내고 피자점으로 총총.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쿵~~~ 뒷골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공간에 숨을 자리라곤 없는데도 쥐 잡는 사람처럼 의자 밑까지 머리를 들이밀고 들여다보는 나를 향해 명찰을 달은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조심스럽게 나를 부른다.
˝저…. 아주머니 혹시 혼자 피자 먹던 남자아이를 찾으세요?˝
˝아이고~~예 맞아요! 그 아이 어디 갔나요?˝
거의 울 듯한 내 표정에 여학생도 긴장하면서 말했다.
˝저. 화장실 갔을지도 몰라요. 아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거든요.˝
그 여학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화장실까지 가는 잠깐 사이에 너무도 무시무시한 생각들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화장실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네 개의 문이 있었고 그중 하나의 닫힌 문 앞엔 피자헛 냅킨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는 연신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겁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애타게 부르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정신없이 녀석을 끌어안으며
˝아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피자두 조각을 다 먹고도 나타나지 않는 엄마를 걱정하다가 언젠가 공중화장실에서 갑자기 변을 본 녀석 앞에서 휴지가 없어서 난처해하던 생각을 끄집어내게 된 것이다.
엄마도 휴지가 없어서 화장실을 탈출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자,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화장실 위치를 묻고는 냅킨을 몇 장 움켜쥐고 찾으러 나섰던 것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네 개의 문을 차례로 노크하며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의 목소리가 아닌 소리만 새어 나왔고 마지막 하나 남은 문은 잠긴 상태로 아무리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는지라 녀석은 그 안에 엄마가 있다고 확신하며 끈질기게 두드려 대고 있었다. 아이가 두드리고 있던 문은 화장실 물품을 넣어두는 ´창고´인 그것 같았다.
내가 쇼핑할 동안 온통 내 생각을 하면서 걱정했을 녀석을 생각하니 아이한테 못 할 짓을 했다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으로 돌아서도 내내.
´피터 팬´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사이 아이는 가물가물한 상태로 접어들었고, 난 그 기회를 빌려 치사하지만, 고백했다.
˝저. 사실은. 고백할 게 있단다.˝
˝듣고 있니?˝
갑작스레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더니 가물가물하던 눈을 초점 없이 뜨면서
[은. 응] 잠에 취해 간단하게 답하는 아이에게
˝실은. 아까 엄마가 화장실에 간다는 것도, 또. 냄새나는 것 보러 간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어. 용서해 줄래?˝↗
일사천리로 고백을 끝내고 물음표에 강한 악센트를 주니 막 잠이 들려고 했던 아이는 반사적으로
[은. 응~] 이라고 대답하곤 잠에 곯아떨어졌다.
휴~~~
'이런 식으로라도 고백을 해야 하는 엄마를 용서해다오´
꿈의 날개를 달은 녀석은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꿈나라로 향했다.
녀석의 분홍빛 뺨에 뽀~~~를 진하게 하고 이불을 다독여 주고 돌아서는데,
찌르르르르~~~~~~~~~~~작은 소리로 나를 비웃는 것이 있었다.
´치사한 고백이야 이건!´
형광등은 내 머리 위에서 이렇게 말하며 찌르르르르~~~~~~~~연신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속이 좁은 형광등의 촉새 같은 입을 막기 위해 난 방문 곁에 있는 스위치를 내렸다.
딸깍!!!!!!!!!!!!!!
/ 염원정-시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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