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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삼각지 로타리 1968
↑ 인천 중국인촌 1968
↑ 파주 용주골 1968
↑ 양양 남해항 1968
↑ 영주역전 1969
↑ 부산 영도다리 부근 1970
↑ 안동 牛(소)市場 1971
↑ 구례 피아골 1973
↑ 서울 종로 2가 1974
↑ 강릉 선교장 1980
↑ 성철스님 1987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서울 정동 배재학당 역사박물관(관장 김종헌 배재대 교수)은 1910~20년대 배재학당 학생들의 생생한 학교 생활 모습을 담은 미공개 희귀사진들을 발굴해 18일 공개했다. 이 사진들은 1914년, 1917년 졸업사진을 비롯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졸업앨범중 하나인 1918년 앨범과 1920~40년대 앨범들을 통해 배재학당에서 이뤄졌던 근대교육과 학생 활동, 그 배경으로 등장하는 당시 경성(서울) 풍경 등을 보여준다. 근대 교육이 막 걸음마를 내딛던 20세기초 이땅 선조들의 학교 생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1930년대 서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근처에서 통학중인 배재고보 학생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전시를 기획한 김종헌 관장은 “교복을 차려 입은 학생들이 근대 도시로 변모해가던 경성의 풍경을 바꾸는 데 중요한 시각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이 주목된다”며 “당시 앨범에 담긴 풍성한 학창 생활의 면면들은 입시 탓에 무미건조해진 요즘 졸업 앨범과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진들은 오는 23일 개막하는 이 박물관의 개관 2주년 기획전 ‘졸업앨범-배재학당 졸업앨범 125년의 이야기’ 전(내년 7월23일까지) 에 선보일 예정이다.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1943년 일본식 속옷 훈도시를 입고 강가에서 수영하다 찍은 기념 사진.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33년 경주 수학여행을 찍은 사진들.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등을 뒤덮은 학생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36년 졸업앨범 사진. 학생들이 서로 엎드린 자세로 어우러져 배재학당의 교표 이미지를 만들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20년대 화학 수업 광경.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제공
↑ 1920년대 교정에서 테니스를 치거나 실내에서 탁구를 치는 모습이다.
↑ 1936년 찍은 웅변부 동아리의 연습 광경. 각양각색의 자세로 연사 흉내를 내는 모습이 재미있다.
↑ 1933년 배재고보의 어느 점심시간. 예나 지금이나 교실에서 도시락을까먹는 건 즐겁다.
↑ 70년대초 대구…넝마주이 소년."1970년대초만 해도 대구 지역 곳곳에는 넝마주이나 아침에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거지, 허잡스러운 물품을 팔러다니는 상이군경 등이 많았다. 블록 담장에 지친 몸을 기댄 채 해바라기를 하며 생모를 생각하는 듯 어린 넝마주이의 표정이 더없이 서럽기만 하다."
↑ 60년대 대구 물장수 아저씨. 60년대만 해도 대구의 상수도 보급률은형편 없었다. 변두리 달동네 주민들은 매일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매일 동네를 방문하는 물장수 아저씨한테 물을 사먹어야만 했다.이때는 드럼통이 급수통으로 이용됐다.
↑ 60년대 개구쟁이들의 신천나들이. (( 60년대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징검다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 아이(왼쪽에서 네번 째))가 갓난애기를 등에 업고 돌보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낸다.
↑ 구름과자를 아시나요?((( 반세기 전만 해도 '국민학교' 앞은 불량 군것질거리의 집산지였다.특히 뜨겁게 달궈진 철통 안에 설탕을 집어넣으면 금세 양철통에서 구름이피어올랐다.'구름과자'로 인기가 높았던 솜사탕 제조기는 척박한 일상을 살던 아이들에겐 꿈결 같은 것이었다.
↑ 엄마 제가 이 잡아 드릴께요. ((( 공중위생 시스템이 전무했던 60년대에는 이와 벼룩, 빈대가 주민들의 몸 곳곳에 기생했다. 볕이 좋은 날 동구 신천동 푸른다리 근처 판잣집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면서 이를 잡아 주고 있는 딸의 눈매가 더없이 훈훈하기만 하다."
↑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 '준공 직전의 경북도청. 준공 직전 공사 중인 경북 도청 창문 턱에 올라가 손을 잡고 놀고 있는 동네개구쟁이들. 도청은 옛 중앙공원 자리에서 1966년 4월1일 현재자리로 이전했다.
↑ 1968년 안양역 모습
↑ 60년대의 부산 자갈치시장.
↑ 60년대 자갈치 아지매들의 화사한 모습.
↑ 2.28당시 경북고생들과 대구고생들이 경찰에 검거되어 끌려가고 있는 모습
↑ 1960. 3. 15 마산여고생 시위대에 소방차가 물을 쏘고 있다
↑ 2·28직후 여학생들이 시위하고 있는 모습
↑ 이순재와 남정임의 한창때 모습. 최인현 감독이 1969년에 발표한 영화 "춘원 이광수"의 한 장면. 춘원의 젊은시절 역을 맡은 "이순재"와 그의 아내 허영숙 역을 맡은 "남정임"이 극중 연애하던 시절의 한창 때 모습이다.
"남정임"의 눈물이 고인 듯한 눈망울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진이다.이 영화에서 중년 이후의 춘원과 허영숙 역은 "김진규"와 "조미령"이맡아서 열연한다. "이광수"의 일대기를 "최인현"감독이 당대의 톱스타를 더블 캐스트로 기용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영화화하였지만, 흥행에는실패했다.
↑ 60년대 극장 쇼무대의 트위스트 김 1960년대 극장 쇼 공연사진."트위스트 김"과 한 사람이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추고 있는 있는데 저 사람이 극장쇼의 전설이라는 "체리보이"이다.
1968년경 부산의 극장무대로 추정되는 사진.
↑ 60년대 통금위반자들. 5.16 이후 통금위반자를 서울 명동에 있던 시공관에 임시 수용하고 있는 모습
↑ 노래하는 추억의 스타 "김승호"
↑ 1960년대 아리랑 꽃신 ( 5cm ~ 7 cm )1960년 주한미군 이나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사간 아리랑 모형 꽃신 선물세트. 소형 남녀 고무신 한 켤레로 규격은 마주 작은 모형이다. 신발 안에는 KOREA라고 선명하게 찍혀 있는 글씨와 함께 두루마기의 남자와 한복을 입고 춤을추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 1962년 강화대교 기공식. 5.16 직후에 갑곶나루에서 거행된 강화도 육로개설 기공식에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참석하여 치사를 하고 있다. 이 강화대교는 오랜 난공사 끝에 1970년 준공된다.
▲ 1951. 4. 20. 대구 근교 훈련소에 신병 입대자들이 입소하고 있다.
▲ 1951. 5. 15. 대구 근교 훈련소에서 신병들의 수료식이 열리고 있다.
▲ 1951. 5. 15. 대구 근교 훈련소, 수료식을 마친 신병들이 부대배치를받고 있다.
▲ 1951. 5.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열차를 타고전선으로 가고 있다.
▲ 1951. 5. 20. 지게부대.
▲ 1950. 7. 7. 기마대 행렬.
▲ 1950. 7. 29. 주야간 전투에 지친 국군 병사들이 아무데서나 쓰러져자고 있다.
▲ 1951. 5. 29. 평화로운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
▲ 1951. 5. 26.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전차가 고개를 넘어 마을로들어오고 있다.
▲ 1951. 9. 11. 피난길에 만난 형과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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