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夜相携花下謌 (청야상휴화하가)
맑은 밤 함께 모여 꽃 아래서 노래하니
圓蟾已復現山河 (원섬이복현산하)
둥근 달이 벌써 돌아와 산하를 밝히누나.
凉添麻麥垂垂露 (양첨마맥수수로)
삼과 보리에는 한기가 맺혀 이슬방울이 송골송골
風掠池塘灔灔波 (풍략지당염염파)
연못에는 바람이 스쳐 물결이 살랑살랑.
諸子論懷宜有述 (제자논회의유술)
자네들은 품은 생각 속 시원히 털어놓게.
良辰回首易輕過 (양신회수이경과)
좋은 철은 머리 돌리면 쉽게 훌쩍 지나가지.
曲欄西畔千絲柳 (곡란서반천사류)
굽은 난간 서쪽에는 버들가지 천 가닥이
一倍婆娑影更多 (일배파사영갱다)
곱절로 너울대며 그림자가 더 많이 진다.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 1901년에 지었다. 구례에 있는 구안실(苟安室) 매천의 집에 친구들이 모였다. 날씨가 화창하여 화계 아래 둘러앉았다. 밤이 되어 하늘에는 둥근 달이 떠올랐다. 달빛이 환하여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과 연못에 이는 물결이 훤히 보였다. 뜬구름 같은 인생이라 좋은 철에 얼굴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품은 생각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숨기지 말고 털어놓자. 이런 순간이 언제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잖은가.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속마음을 풀어놓는 사이 난간 저편 버들가지는 바람에 흔들리며 달빛 받아 그늘이 일렁거린다.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이어지는 대화에 호응하는 듯하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