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섬긴 이는 필시 저 달이었으리
스승이 기우는 쪽, 외길 따라 뻗은 뿌리
장부는 귀를 닫은 채 서걱서걱 울고 있다
그리움 깊은 만큼 먹물마저 짙은 나날
벙어리 뻐꾸기는 안부 물어 날아가고
행여나 펼쳐보실까 푸른 밤을 서성인다
잡음 많은 세상 소식 천리 밖에 다스리면
부끄러운 가슴에도 귀한 음성 들려올까
오곡문 적시는 답신, 그림자도 환하다
/성국희
조선의 철학과 미학적 집약인 담양 소쇄원. 보고 또 봐도 조촐하니 격조 높은 아름다움에 넋을 앗긴다. 제월당 마루에서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에 취하다 보면 꽃피는 소리, 달 뜨는 소리까지 손에 잡힐 듯하다. 소쇄옹 양산보(1503~1557)가 시작해 가꿔온 자연과의 조화며 정신적 경지를 돌아만 봐도 심신이 절로 씻기는 것이다.
그런 원림에도 '잡음 많은 세상 소식'에 대한 우국(憂國)이 얹힌다. '귀를 닫은 채 서걱서걱' 우는 '장부'나 '벙어리 뻐꾸기'에도 시대를 앓는 여러 모습이 겹친다. 그럴수록 작금의 험한 말들에 피로해진 귀를 씻고 싶기도 하다. '오곡문(五曲門)' 물처럼 먼 길을 돌아와 더 푸른 소식. 부디 길이 남을 '귀한 음성'으로 닿기를!// 정수자 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