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치고,
밟는 흙이 밥처럼 부드럽다
속 환히 보이는
가난한 터전으로
저만큼 햇살은 벌써
밭고랑을 치고 있다
지난날 엉킨 덤불도
풀씨의 울이 되고
바람과 살얼음도
깍지 풀어 넘는 길에
떡잎이 기지개를 켜나
발바닥이 간지럽다 /백점례
개구리가 나온다는 경칩. 지금은 우수 즈음부터 개구리가 튀어나온단다. 개울을 깨우던 폴짝임도 경칩의 소관을 넘어서나 보다. 온난화 탓이라지만 절기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진다. 하긴 채소며 과일의 제철은 물론 사람도 점점 철이 없어지고 있다.
그래도 '밥처럼 부드럽다'는 흙을 찾아 촉감을 느껴보고 싶은 때다. 우리네 밥을 주는 흙이 얼었던 몸을 풀며 다시 밥 지을 준비를 하는 것. 어느새 도타워진 손길로 '밭고랑을 치고' 다니는 햇살의 크나큰 덕이다. 그런데 '발바닥이 간지럽다'니, 떡잎들 기지개 짓에 지상의 발바닥마다 옴찔옴찔 봄 간지럼이 지피겠다.
그 모두 '살얼음도 깍지 풀어' 넘어온 봄의 오랜 소임. 따듯한 햇볕이 바람을 잡고 여는 힘이다. 봄이 왔건만 얼음 더 서걱대는 이즈음 거리에도 볕이 들면 참 좋겠다. 작은 풀씨들도 싹을 내도록 모쪼록 고르게!//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