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이 쏟아질 듯한
전나무 숲을 딛고 와서
아니 바늘의 그늘을
겨우 딛고 와서
마침내 서보는
월정사 팔각구층
석탑 앞
한 층 더
한 층 더
당신의 모든 간절함 위에
딱 한 층 더
낮달 슬쩍 얹어놓고
가는 바람
종을 때리고 가다
끝내 자신도
울고야 마는 바람
배웅하며 손끝이 떨리는
문수, 문수보살이여.
/김창균
월정사로 가는 길 양편에 선 우람하고 훤칠한 전나무들을 본 적이 있다. 거대한 침묵의 숲길을 걸어가 본 적이 있다. 수천 개의 바늘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전나무를 우러러본 적이 있다. 그리고 월정사 대웅전 앞뜰 팔각구층석탑 아래에 가만히 서 본 날이 있다. 언젠가는 백지처럼 환한 대낮에, 언젠가는 기울어지는 석양의 때에, 언젠가는 깨끗하고 원만한 달이 떠오른 한밤중에, 언젠가는 얼음 같은 엄동(嚴冬)의 새벽에. 그 팔각구층석탑 아래 서면 마음이 간절해지기도 했다.
시인은 석탑 맨 위에 낮달이 떠서 또 하나의 층을 이룬 것을 본다. 바람이 하얀 낮달을 밀어온 것을 본다. 그리고 멀리 가는 종소리를 끝까지 듣는다. 무욕(無慾)할 때에만 눈과 귀에 들어와 보고 듣게 되는 것들이다. // 문태준 시인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