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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상수리나무
누가
읽지도 않고
말없이 지나갔네
행여,
부딪힐까 봐
온몸 웅크린 채
먼지 낀
둔탁한 건반
툭,
치고 가는 가을 /윤경희
투둑 툭 지는 게 많아지는 즈음이다. 가을 산은 떠날 준비들로 특히 더 분주하다. 그중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의 울림이 길게 남는다. 빛깔이며 모양새도 매끈하니 앙증맞은 도토리. 그래선지 발치에 막 떨어지는 것이나 떨어져 뒹구는 것이나 자꾸 손이 간다. 다람쥐들 일용할 양식으로 남겨둬야지 하면서도 도토리만 보면 줍고 매만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상수리나무 옆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를 주워 본다. 적요를 깨뜨리는 소리에 적요의 실체를 실감하는 시간, 그 속에는 '누가/ 읽지도 않고' 지나간 고요도 배어 있을 것이다. '부딪힐까 봐/ 온몸 웅크린 채' 지나가 버리길 기다리던 침묵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사이로 '먼지 낀/ 둔탁한 건반'을 잊지 않았다는 듯 '툭,/ 치고 가는 가을'. 묵혀둔 건반이라도 한번 울려야겠다.
익을 대로 익어 쏘옥 빠지는 아람. 서정시는 그렇듯 '회동그란히'(박용철) 익어 떨어져야 진수라던가. 잘 익은 '회동그란히'에 붙들려 상수리 아래를 거닌다. //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