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그리워서
천지를 떠돌 무렵
가는 구름 따라가며
내 눈에 담은 것들
천 갈래 가슴 녹이는
꽃바람이 죄 아닌가.
한두 잎 꽃을 좇아
살아가던 젊은 시절
강 건너 구름 끝에
자갈밭 세워두고
큰 키의 피나무 앞에
두 무릎 세운 일들
가슴엔 불심지를
두 눈에 쌍심지를
올봄은 흔흔한지
여닫이도 따지 않고
은근한 울음만 받아
속절없는 한탄이네.
/성춘복
'여닫이도 따지 않'은 '흔흔한' 봄도 가고 가을이 마구 닥칠 때. 봄여름 다 지나와 돌아보면 '천 갈래 가슴 녹이는 꽃바람이 죄'라던 그때의 무모함도 그리워진다. 그렇게 '꽃을 좇아 살'던 시절이 없었으면 그리움의 여울이며 물소리의 굽이굽이를 어이 알까 싶다. 아니 '가슴엔 불심지를 두 눈엔 쌍심지를' 돋우지 않았으면 청춘이라고 추억하기도 민망할지 모른다.
쇠도 녹일 뜨거움 속에서 '천지를 떠돌' 만큼 호기로 넘치던 생의 한때. 먼 구름을 따라나서던 먼 길의 손짓들도 수그러들고 이제는 여울의 물소리마저 수척해지고 있다. 그래도 '은근한 울음'들 받아들고 미뤄둔 가을도 더 지을 수 있으리라. 조금씩 버리며 여위어가는 먼 여울의 여운이 깊다.//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