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歲煙光似轉輪(세세연광사전륜)
해마다 좋은 계절 윤회하듯 돌아오고
新叢記得舊精神(신총기득구정신)
꽃포기는 새로 돋아 옛 정신을 되살렸지.
漏根何處歸來些(누근하처귀래사)
그 어디서 번뇌의 뿌리가 돌아왔을까?
香國前生未了因(향국전생미료인)
전생에 맺은 꽃 나라 인연을 아직 끝내지 못했네.
暗入杜鵑聲裏恨(암입두견성리한)
한(恨)은 몰래 두견새 울음에 스며들고
長成蝴蝶夢中身(장성호접몽중신)
몸은 나비의 꿈속으로 변신해 들어갔네.
分明句引黃昏月(분명구인황혼월)
황혼녘에 돋아 오른 밝은 달빛 끌어당겨
庭院人空囑寫眞(정원인공촉사진)
인적 끊긴 정원에서 사진을 찍게 하네.
19세기 시인 하원(夏園) 정지윤(鄭芝潤·1808~1858)
이 지었다. 봄철에 피고 지는 꽃의 운명에 시인의 마음이 흔들렸다. 꽃에 넋이 있고, 그 넋이 말을 한다면 하소연은 아마 이러하리라. 봄철마다 묵은 포기에서 정신을 다시 차린다.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한 운명이라, 번뇌의 뿌리에서 싹이 돋아나고 향기를 피워 전생의 인연을 이어간다. 한을 뱉어내려 해도 입이 없으니 두견새 울음에 몰래 실어 보내고, 몸이 있어도 바로 떨어지니 호접지몽(蝴蝶之夢)에서나 살아 있다.가냘프고 불안한 꽃의 존재를 누가 가엽게 여길까? 인적 끊긴 정원 하늘 위로 달이 환히 떴다. 그 달빛 끌어와 사진을 찍어 달래야지. 바닥에 드리워진 꽃 그림자는 슬픈 꽃의 넋! 꽃 그림자가 꼭 시인의 그림자 같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