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지술(止謗之術)
젊은 시절 다산은 반짝반짝 빛났지만 주머니에 든 송곳 같았다. 1795년 7월 서학 연루 혐의로 금정찰방에 좌천되었다. 이때 쓴 일기가 '금정일록(金井日錄)'이다. 이삼환(李森煥·1729~1814)이 다산에게 위로를 겸해 보낸 편지 한 통이 이 가운데 실려 있다. 글을 보니 젊은 날의 다산이 훤히 떠오른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예전 어떤 사람이 문중자(文中子)에게 비방을 그치게 하는 방법[止謗之術]을 물었다더군. 대답은 '변명하지 말라[無辯]'였다네. 이는 다만 비방을 그치게 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바탕을 함양하는 공부에도 마땅히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걸세. 어찌 생각하시는가?" 비방이 일어나 나를 공격할 때 말로 따져 상대를 눌러 이길 생각을 말아야 한다. 설사 내가 그들을 말로 이겨도 그들은 승복하지 않고 더 독랄한 수단을 준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삼환은 이어 자신이 평생 좋아했다는 '명심보감'에 실린 고시 한 수를 소개했다. "못난이들 화가 나 성내는 것은, 모두 다 이치가 안 통해서지. 마음에 이는 불을 가라앉히면,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이 되리. 저마다 장단점은 있는 법이요, 덮고 추움 어디나 다름없다네. 시비는 실상이 없는 것이라, 따져본들 모두가 헛것인 것을(愚濁生嗔怒, 皆因理不通. 休添心上火, 只作耳邊風. 長短家家有, 炎凉處處同. 是非無實相, 相究摠成空)."
이어 그는 가까이서 여러 날을 지켜보니 다산이 환하고 시원스러워 구차한 구석이 없고 자신의 잘못은 깨끗이 인정하는 진심의 사람이었다고 칭찬했다. 끝에 가서 그가 다산에게 준 충고는 이렇다. "다만 풍성(酆城)의 보검은 괴이한 광채가 지나치게 드러나고, 지양(地釀)의 훌륭한 술은 짙은 향기가 먼저 새나온다네. 매번 송곳 끝이 비어져 나오는 듯한 기운이 많고 끝내 함축의 뜻은 적으니 이것이 굳이 백옥의 작은 흠이라 하겠네. 주자께서 진동보(陳同父)에게 답장한 글에서 '예로부터 영웅은 전전긍긍하면서 깊은 물가에 임하거나 살얼음을 밟는 듯한 가운데로부터 나오지 않은 법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감히 이 말을 그대에게 드리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