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돌에 새기다가
그만 내 가슴을 쪼았다
짙게 음각된 이름
향기로운 계절과
우수의 한때
세월이
눈처럼 쌓이고
이름 위에 이제는
숨결이 살아
붉은 새살로
돋아 올랐다 /문효치
사는 일이 어느 때에는 나무나 돌에 인장(印章)을 새기는 일인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나무나 돌 아니라 내 가슴에 잊지 않게 단단하게 이름을 새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이름을 혹은 내가 간절하게 사랑했던 이름을,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름을 새기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이름을 새기노라면 과일처럼 꽃처럼 달콤하고 향기롭고, 또 슬픈 기억의 대목에서는 먹구름처럼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마음의 토양 위에도 흰 눈은 내려 쌓였으니 오로지 그 이름에는 새 숨결만이 있을 일이다. 새해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우리의 가슴에 시냇물처럼 돌돌 흐르고, 또 눈부신 햇빛 속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깊은 눈 속에 살자.//문태준 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