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
서울로 태국으로 아들 손자 다 떠나
고향 달빛 몇 사발로 제사상을 차렸네
나 혼자 제관이 되어 고즈넉이 절을 하네
오십 년 그 세월도 난 한 촉 피는 사이
상 차리던 당신이 영혼으로 다녀간 밤
내 집에 자정의 만찬 설거지하고 가겠네
/이용상(1934~2015)
깨끗한 마감은 모두의 소망이다. 특히 생의 마감은 잠자듯 하고 싶다고들 되뇐다. 목욕 후 옷 다 갈아입고 잠에 들더니 그대로 떠나는 구순(九旬)의 맑은 복도 봤다. 얼마 전까지 '고향 달빛 몇 사발로' 아내의 '제사상을 차'리던 노시인도 순간이동처럼 고요히 저세상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생전에 '상 차리던 당신이/ 영혼으로 다녀간 밤'이면 '당신'은 또 얼마나 간절히 불렀을까. 그런데 '오십 년 그 세월도/ 난 한 촉 피는 사이'라니! 그동안 '혼자 제관이 되어/ 고즈넉이 절을 하'던 노시인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리. 긴 그리움의 해후에는 난도 오래 피려니 오붓이 누리시길….
하지만 시인과 벗하던 '고향 달빛'은 한참씩 쓸쓸하겠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올해 '자정의 만찬/ 설거지'는 어느 때보다 환히 하고 가겠네. 제기(祭器)라도 씻듯 달빛이 더 푸르게 부서지는 한겨울밤에. //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