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
늦가을 꽃의 마알간 낯바닥을
한참을 쪼그려 앉아 본다
벌들이 날아든 흔적은 없고
햇살과 바람만이 드나든
흔적이 숭숭하다
퇴적된 가루 분분한
홀몸에 눈길이 가고
나도 혼자라는 생각이
정수리에 꼼지락대는 순간,
꽃 속 꽃이 내어준 자리에
뛰어들었다.
혼자 고요한 꽃은,
누군가 뛰어든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꽃은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저도 이내 맑아졌다
곁이리라
화엄(華嚴)이리라 /신병은
맑은 낯을 한 꽃이 있다. 생명들의 기운이 점차 쇠락해지는 늦가을에 꽃의 얼굴을 본다. 그 어떤 것도 탐하지 않아 아주 고요한 내면으로 꽃은 있다. 자기를 잘 제어하면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넉넉하다고 느끼면서 꽃은 있다. 호수의 수면과도 같은 꽃의 조용하고 잠잠한 내부로 시인이 들어간다. 들어간다는 것은 마음이 이끌려 이동한다는 뜻이다. 이끌려 눈길을 주고받고, 내심(內心)을 나눈다는 뜻이다.
홀로 지내느라 누군가를 수용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다소 놀람이 없지 않았겠지만 꽃은 시인에게 곁을 허락한다. 그리고 다시 애초의 평온하고 깨끗하고 수수한 낯으로 돌아간다. 이런 사귐이라면 상스럽지 않다. 이 꽃과 같은 영혼의 맑음과는 사귀고 싶다.//문태준 시인 /그림;박상훈/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