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담연정기(澹然亭記)'에 도하(淘河)와 청장(靑莊)이란 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둘 다 물가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새다. 먹이를 취하는 방식은 판이하다. 도하는 사다새다. 펠리컨의 종류다. 도(淘)는 일렁인다는 뜻이니, 도하는 진흙과 뻘을 부리로 헤집고, 부평과 마름 같은 물풀을 뒤적이며 쉴 새 없이 물고기를 찾아다닌다. 덕분에 깃털과 발톱은 물론, 부리까지 진흙과 온갖 더러운 것들을 뒤집어쓴다. 허둥지둥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헤매고 다니지만 종일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늘 굶주린다.
청장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신천옹(信天翁)으로 불린다. 이 새는 맑고 깨끗한 물가에 날개를 접은 채 붙박이로 서 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좀체 옮기는 법이 없다. 게을러 꼼짝도 하기 싫은 모양으로 마냥 서 있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희미한 노랫가락에 귀를 기울이듯 아련한 표정으로, 수문장처럼 꼼짝 않고 서 있다. 물고기가 멋모르고 앞을 지나가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날름 잡아먹는다. 도하는 죽을 고생을 해도 늘 허기를 면치 못한다. 청장은 한가로우면서도 굶주리는 법이 없다.
연암은 이 두 가지 새에 대해 설명한 후,이것을 세상에서 부귀와 명리를 구하는 태도에 견주었다.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쫓아다니면 먹이는 멀리 달아나 숨는다. 욕심을 버리고 담백하게 있으면 애써 구하지 않아도 먹이가 제 손으로 찾아온다. 권력이든 명예든 쟁취의 대상이 되어서는 내 손에 들어오는 법이 없다. 갖고자 애쓸수록 멀어진다. 담백한 태도로 신중함을 지키고, 희로애락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때, 보통 사람들이 밤낮 악착스레 얻으려 애쓰면서도 얻지 못하는 것들이 저절로 이른다.
박지원에게 이 설명을 듣고 이덕무는 청장이란 새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청음관(靑飮館)이라고 쓰던 자신의 당호를 당장 청장관(靑莊館)으로 고쳤다. 신천옹, 하늘을 믿고 작위하지 않는 청장과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없어도 그만이다. 조금이면 만족한다. 그런 마음속에 넉넉함이 절로 깃든다. 아등바등 욕심만 부리면 먹을 것도 못 얻고 제 몸만 더럽힌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