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뜻은 이렇다. 사람의 한 생은 기러기가 눈 쌓인 진흙밭에 잠깐 내려앉아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다. 기러기는 다시금 후루룩 날아갔다. 어디로 갔는가? 알 수가 없다. 예전 우리 형제가 이곳을 지나다가 함께 묵은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를 맞아주던 노승은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나 새 탑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예전 절집 벽에 적어둔 시는 벽이 다 무너져 이제 와 찾을 길이 없다. 분명히 내 손으로 적었건만 무너진 벽과 함께 흙으로 돌아갔다. 노승은 육신을 허물고 탑 속으로 들어갔다. 틀림없이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다. 여보게 아우님! 그 가파르던 산길을 기억하는가? 길은 끝없이 길고, 사람은 지쳤는데, 절룩거리는 노새마저 배가 고프다며 울어대던 그 길 말일세. 이제 그 기억만 남았네. 그 안타깝던 마음만 이렇게 남았네.
설니홍조(雪泥鴻爪)란 말이 이 시에서 나왔다. 눈 진흙 위의 기러기 발자국이란 말이다. 분명히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자취만 남고 실체는 없다. 한 해를 바쁘게 달려왔다. 일생을 숨 가쁘게 살아왔다. 여기저기 어지러이 뒤섞인 발자국 속에는 내 것도 있겠지. 아웅다웅 옥신각신 다투며 살았다. 한번 밀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사생결단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덧없다. 발자국만 남기고 기러기는 어디 갔나?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오늘도 '사는 해 백년을 못 채우면서, 언제나 천년 근심 지닌 채 산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90대 노부부는 세밑의 구세군 냄비에 2억원을 넣고 자취를 감췄다. 천년만년 절대 권력을 누릴 것 같던 독재자는 심근경색으로 돌연히 세상을 떴다. 누구나 죽는데 그것을 모른다. 자취가 남은들 어디서 찾는가? 눈이 녹으면 그 자취마저 찾을 길이 없으리. /정민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