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와 편지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눈송이가 몇 날아온 뒤에 도착했습니다
편지지가 없는 편지입니다
편지봉투가 없는 편지입니다
언제 보냈는지 모르는 편지입니다
발신자도 없는 편지입니다
수신자도 없는 편지입니다
한 마리 새가 날아간 뒤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 것을 알았습니다
돌멩이 하나 뜰에 있는 것을 본 순간
편지가 도착한 것을 알았습니다
/오규원(1941~2007)
오규원 시인은 이 시가 실린 시집을 펴내면서 스스로를 "물물(物物)과 나란히 앉고 또 나란히 서서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나란히'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가. 이 말에는 우월한 지위가 따로 없다. 오직 평행(平行)이 있을 뿐이다.
시인은 눈송이와 한 마리 새, 그리고 돌멩이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눈송이, 새, 돌멩이가 그들 각각의 언어로 우리에게 편지를 보낸다니 얼마나 멋진가) 그 교신에는 구애받는 형식도 없다. 소인(消印)도 발신자도 없이 배달되어 온, 한 통의 편지이다. 둘 사이에서의 접촉은 서로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이해와 긍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따라 움직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평행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눈송이와 나란하고, 새와 나란하고, 돌멩이와 나란하다. 어디 이뿐일까. 우리는 모든 존재들과 나란하다.
/문태준;시인 /그림;이철원/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