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에 머뭇대다, 알면서도 속절없이
소실된 변명을 삼킨 미로 같은 터널 너머
우리는 때로 무수히
내릴 역을 지나쳤다
폐선이 되었다는 영동선 미로(未老)역에선
홀로움을 견뎌오던 침목의 침묵이 더러는
다음 생 지평(砥平)역에 당도할
화석 같은 사연이 되듯
산다는 건 지난 생에 폐역 하나 남기는 일
망설임에 머뭇대다, 알면서도 속절없이
불현듯, 생의 변곡점 돌아
그대라는 역에 닿는 일 /이민아
망설임은 우리 발밑에 구덩이를 판다. 그 속에 뭔가를 묻고는 땅을 치게 하기 일쑤다. 그때 망설이지 말고 얼른 움직일 것을! 기차를 타든 내리든 곧바로 행동에 옮길 것을! 그러면 그 시간을, 그 사람을 잡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되감아보는 필름을 누구나 품고 있으리.
그 역에서 내렸다면 생이 바뀌었을지도, 돌아보면 이미 늦은 것. '놓친 기차는 아름답다'고 일찍이 이르지 않았던가. 하지만 '알면서도 속절없이' 망설이다 '폐역'을 남기거나, 폐역으로 남기도 한다. 아직 덜 늙은 역[未老驛] 하나쯤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불현듯 생의 어느 변곡점을 돌아가다 보면 '그대라는 역'에 닿기도 하려나.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