宿山家(숙산가) 산골 집에 묵다
夜宿幽人宅(야숙유인택) 밤 되어 유인(幽人)의 집에 묵으니
彌淸俗客心(미청속객심) 속세 사람은 마음 한결 맑아지네.
門前流水在(문전유수재) 문 앞에는 계곡물
簷角碧峯臨(첨각벽봉림) 추녀 끝에는 푸른 봉우리
晩節依寒菊(만절의한국) 국화 곁에서 지조를 지키고
閑情托素琴(한정탁소금) 거문고에 여유로움 실려 있네.
松風如有意(송풍여유의) 솔바람은 다 알고 있는지
斷續和孤吟(단속화고음) 외로운 노래에 화답하며 불어오네.
이름을 알 수 없는 열두 살 소년의 시다. 소년이 산중에 있는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집주인은 별말이 없는 조용한 분, 집에 들어서 둘러보기만 해도 절로 상쾌해진다. 대문 바로 앞에는 계곡물이 흘러가고, 지붕 모서리에는 푸른 산봉우리가 바짝 다가서 있다. 산속에 푹 파묻혀 있는 집이다. 화단에 심겨 있는 국화는 나이 든 주인어른의 깨끗한 삶을 보여주고, 벽에 걸려 있는 거문고는 여유로운 마음씨를 말해준다. 풍경은 소년의 마음을 잔잔하게 흔든다. 그때 마침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는 듯이 솔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노래에 화음을 넣어준다. 산속의 풍경과 소년의 마음이 몹시도 맑고 시원하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