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눈에 보이지도 붙잡을 수도 없는 나그네. 보이지도 붙잡히지도 않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히 살아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손길이 닿는 것마다 생기를 돌게 한다.
이 세상에 만약 바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살아 있는 것은 시들시들 질식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빛이 바래져 재가 되고 말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손에 붙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것을 바탕으로 보이는 것이 있게 되고, 들리지 않는 것을 의지해서 들리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다.
산을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무엇에 쫓기듯 안절부절 불안해하는 부류들이 있다. 물론 그들은 도시형 관념적인 지식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의 혼잡과 소음에 잔뜩 중독된 나머지, 본래적인 질서와 고요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이 순수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旣見如來.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은 모두가 허망한 것. 제상과 비상을 함께 볼 수 있다면, 비로소 우리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될 것이다. /법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