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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의讚美-尹心悳 St. Francesc

作詞 윤심덕, 김우진 作曲 Iosif Ivanovich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희 가는 곳 그 어데이더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고 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尹心悳 聲樂家 '死의 讚美' 남기고 投身

1920年이 되면서 이 땅에서도 西洋 音樂會가 本格的으로 열리기 始作했습니다. 1920年 한 해에만 5月 4日 日本 소프라노 來韓 獨唱會,5月 25日 延禧專門 慈善音樂會, 6月 9日 京城樂隊 演奏會,10月 7日 스미드 牧師 歡迎音樂會, 12月19日 베토벤 誕生 150周年 記念音樂會 等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스미드 牧師 歡迎 音樂會의 프로그램에 따르면 바이올리니스트 洪蘭坡, 피아니스트 김영환과 함께 소프라노 尹心悳, 피아노 윤성덕, 바리톤 윤기성 等 3男妹가 나란히 出演했습니다.

소프라노 尹心悳(1897~1926)은 같은 時代에 活動한 한기주와 함께 韓國 最初의 소프라노이자 最初의 專門 聲樂家로 꼽힙니다. 尹心悳은 1897年 平壤에서 敎會 勸士 家庭에서 태어나 平壤 崇義女學校와 京畿女高의 前身인 京城女高普 附設 敎員養成所를 卒業하고 敎師로 社會生活을 始作했습니다. 當時 朝鮮總督府에서는 音樂에 才質 있는 사람들을 選拔해서 日本 東京의 上野音樂學校에 遊學을 보냈는데, 尹心悳은 여기에 選拔됐습니다.

上野音樂學校를 卒業하고 歸國한 尹心悳은 오페라 아리아와 슈베르트 歌曲을 부르며 長安의 話題가 됐습니다. 當時 鍾路 YMCA에서 열린 歸國 獨唱會는 韓國 女性 聲樂家 最初의 리사이틀로 꼽힙니다. 當時 新聞 記事처럼 "눈이 크고, 입이 크고, 明朗한 性格 그대로 自身을 豪宕하게 내던져버리는" 尹氏는 舞臺에 서기만 하면 聽衆의 關心을 集中시키며 話題의 焦點이 됐습니다. 日本에서 歸國할 때에도 세 名의 靑年이 따라왔다는 所聞이 나돌 만큼 人氣가 많았습니다.

1926年 尹心悳은 演劇團體 '土月會'의 東道라는 演劇에서 主演으로 出演하면서 演劇俳優로도 活動했습니다. 1926年 7月 日本 大阪의 錄音 스튜디오에서 '메기의 追憶' '望鄕歌'와 함께 同生 윤성덕의 피아노 伴奏로 '死의 讚美'를 녹음했습니다. "廣漠한 廣野를 달리는 人生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디냐. 쓸쓸한 世上 險惡한 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루마니아 作曲家 Iosif Ivanovich의 '다뉴브江의 잔물결'의 旋律에 直接 歌詞를 붙인 '死의 讚美'는 厭世的 情緖로 큰 人氣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尹心悳은 그 人氣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레코드 吹入 直後 下關에서 釜山으로 가는 關釜連絡船에 올랐던 1926年 8月 4日 새벽, 바닷물에 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當時 新聞은 "釜山으로 向하던 배가 對馬島를 지날 즈음, 洋裝을 한 女子 한 名과 中年 紳士 한 名이 서로 껴안고 甲板에서 突然히 몸을 던져 自殺했다"고 傳했습니다. '玄海灘의 情死'로 報道된 當時 事件의 女 主人公이 尹心悳이었습니다. 함께 投身한 男性은 演劇同友會를 組織하고 韓國 近代演劇을 이끌었던 金祐鎭(1897~1926)이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이 알려지자 音盤社들은 廣告를 내고 "눈물에 싸인 尹心悳의 마지막 노래 '死의 讚美' 不遠間 發賣 開始"라고 宣傳했습니다. /作成者 黃圭源
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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