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마디 말씀, 그것도 우리 집의 얘기가 아니라 남의 집의 얘기를 인용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틀을 만들어서 자리해 굳혔다.
홀로 망태를 메고 황량한 들로 나갔다. 아직 아무 소식도 없는 봄의 기운을 내가 캘 참이다.
들판은 황갈색 일색이다. 봄기운은 쑥 포기에 북풍을 이겨내는 훈김을 불어 야들야들한 쑥 순을 돋게 하고, 바람을 받은 쑥 순은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맞는다.
모든 풀이 땅 위에선 말라서 숨죽이고 오로지 땅 밑에서 잠자는데, 밭이랑과 밭고랑에 고개 들고 서서 나를 반기는 쑥은 말 그대로 봄을 알리는 전령(傳令)이 틀림없다.
이 봄의 기운을 가장 먼저 받은 쑥이야말로 힘을 북돋우는 이 땅 위에 모든 푸성귀의 생명을 끌어내는 풀이다.
쑥이 제일 먼저 생동하는 것은 우주의 기운을 먼저 받을 수 있는 도량이 있기 때문이리라. 봄기운을 듬뿍 받은 쑥은 틀림없는 영약인데도, 우리는 외면하고 소만 먹인다.
소가 이른 봄의 쑥을 한 달만 먹으면 논두렁 밭두렁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나를 동하게 했다. 그럴 것이다. 우리 소도 올봄에 일 나갈 때쯤이면 힘이 넘쳐서 고삐를 끊고 논두렁에 몸을 비비고 밭두렁을 받아 허물 것이다.
뿌리째로 뽑아서 망태에 집어넣을 때마다 바람이 귀 뿔을 에고, 날아온 모래알이 볼을 때린다. 한 망태를 채우는 데는 넓은 밭을 두세 개쯤 깡그리 훑어야 하지만 내 마음은 아랑곳없다.
봄을 맞는 유년기, 모래바람은 나를 핥고 때리고 짓이겨 가면서 우주의 기운을 내게 불어넣어 쑥과 함께 강인하게 자라게 해주었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