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장(特長)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은데, 나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예외일 수는 없다.
나는 몸체에 비해 팔다리가 길어서 전체적인 균형을 잃고 있다. 이점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불편을 주고 있었으니, 우리나라 의류의 표준 치수와 동떨어져 있는 내 몸 때문에 겪는 고충이다.
지금처럼 여러 가지의 치수가 다양하게 나오지 못하고 한국 사람의 표준형에 일치시킨, 같은 비례의 크기뿐이니 말이다.
양복은 고사하고 속옷 만해도 그렇다. 목에다 맞추면 소매길이가 짧고 소매에다 맞추면 목둘레에 주먹이 들락거릴 지경이니 평생을 마누라 핀잔 속에 산다.
이것뿐이 아니다. 내 몸의 균형 잃은 팔다리 때문에 어릴 때 여러 가지 별명을 얻는 빌미를 주고 있으며 그들 별명에 대해서 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귀, 거마 제비, 거미같이 팔다리가 길게 돼 있는 곤충의 이름이다.
그런데 내 신체의 생김생김이 남에게는 어떻게 비쳤건 내게는 그야말로 말 잘 듣는, 몸에 붙어있는 연장이다. 팔과 다리가 길어서 어릴 때부터 높은 데 있는 물건 내리는데 탁월하여 그 진가가 발효되어 형제간에 나를 빼고서는 되는 일이 없었고, 동무들끼리 자치기를 해도 내 발이 우리 팀의 잣대에 이용되어 신이 났다. 땅따먹기해도 내 뼘으로 재면 곱의 면적이 됐으니 그까짓 사금파리 실탄은 명중률이 떨어져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땅은 내가 다 따먹기 일쑤다.
모든 관절이 회전 각도에선 타의 추종 불허다. 엄지는 마치 부러진 것처럼 꺾이고, 다른 네 손가락은 손등 쪽으로 활처럼 휜다. 발은 발등이 정강이와의 각을 칠십도 까지, 좁히니 가랑이 벌리기가 유달리 자유롭다. 이런 조건은 저절로 장력(掌力)을 키웠고 지렛대의 원리까지도 작용해서 또래의 팔씨름은 당할 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이 든 형들에게도 적수가 된다.
몸이 그쪽으로 발달하려고 자극하는지, 어렸을 때는 꽤 어른들 속을 썩이는 짓을 했다.
집 앞 한길 가에 서 있는 전화선 전신주를 올라가면 할머니는 두 팔을 앞으로 저으며 고함을 치신다. 학교 점심시간에 집에까지는 왔지만, 점심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나무부터 올라간다. 디딜 쇠도 없고 손잡이도 없는 데다가 전신주에 가시조차 덕지덕지 나 있고 새까만 ‘골올탄’ 칠을 한 전신주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오른다.
남보다 팔을 폈을 때의 둘레가 커서 몸을 나무에 당겨 붙이기가 쉽다. 발바닥은 자유로이 나무 둘레에 밀착되어 순식간에 오르게 된다. 오른 상태에서도 제자리에서 얼마든지 지탱하는 요령도 생겨서 마치 젖먹이 치아 날 때 근지러워 물어뜯는 쾌감마저 느끼니 할머니가 기겁할 지경인들 상관하랴!
종국에는 어머니가 나오심으로써 내 재주는 아무도 보는 이 없이 싱거운 끝을 맺고 만다.
뽕나무가 우리 집터 가장자리에 한 그루 있었는데, 이 나무는 꽤 커서 가지가 여러 갈래로 벌어져 있고 해마다 먹음직한 뽕 오디가 새까맣게 달리는, 내게는 봄철 한때의 군것질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사탕 나무인 셈이다.
뽕 오디를 털어서 주운 것은 흙이 묻었다며 외면하고, 굳이 나무에 올라 따먹기를 고집하는 나를 별도리 없이 할머니가 승낙하신다. 지켜보는 가운데 몇 개를 따오기로 하는 승낙을 간신히 받고 비호같이 올라가서 입이 온통 푸르다 못해서 검게 될 때까지 따먹는다.
손자 책임 떠맡은 할머니는 목이 아파 어쩔 줄을 모르고 계속 재촉하시는데, 욕심이 화근이라, 더 높은 가지를 올라서 가느다란 가지를 훑어가며 재주 끝 기량을 내는데, 아뿔싸! 그만 중심을 잃고 떨어지고 말았다. 긴 팔도 긴 다리도 아무런 소용이 없이 죽는 일, 체험일 수 없는 절박한 순간이다.
무엇인가를 잡자는 본능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궁둥이는 제일 밑의 나뭇가지에 걸쳐 있고 손은 지극히 자연스레 나뭇가지를 잡고 있지 않은가?!
순간 할머니의 동정을 살피는 내 눈에 할머니의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다. 즉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시치미를 뗀 후 식구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는 비밀을 간직하게 되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느니, 물 좋아하면 물에서, 나무 좋아하면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얘기를 듣기 싫으니까.
이런 신체조건을 살리지 못한 점이 조금은 후회되기도 하는데, 아마도 그대로 그야말로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으면 모르긴 해도 맨손으로 벽을 오르는, 그런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는 되지 못했어도 그쪽의 애호가나 관심 있는 동호인은 됐을 성싶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