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꿈속에서도 멀어진 고향 땅에서의 어린 시절, 어엿하게 동무들과 어울려 천연스럽게 뛰놀 때이건만 우리 집안의 사정을 어렴풋이 깨달은 나는 집안일을 돕는답시고 꽤 마음 쓴 것 같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스스로 꼴 베러 간답시고 낫을 내다 숫돌에다 가는데, 이게 잘 되질 않는다. 너무 갈면 날이 넘어서 도리어 무디어지고 또 못 미치면 날이 서지 않는다. 날이 서지 않으면 낫이 미끄러져서 손가락은 다치거나 풀포기를 물어 당겨서 포기 채로 뽑히는 불편이 따른다. 또 일이 더뎌져서 짜증 나고 정신이 흐트러지면서 일을 저지르는 때가 더러 있다.
표현하자면 날을 세운다는 것은 그 쇠판 단면의 날이 예리함의 극치에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최상의 날을 감지하는 법은 엄지 손끝으로 만져서 알아내야 하는, 특유의 자기 숙련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한데 그저 숫돌에다 문질러서 이루려고만 하니 안 되고, 나름대로 세웠다 하드래도 그것은 내 기준에만 맞을 뿐이다. 되거나 말거나 절차대로 흉내 내 밟아 나간다.
낫을 갈아서 지게에다 꽂고, 지게 멜 끈을 조이고, 지게 작대기를 들면 그럴듯하다.
어른의 체형에 맞춘 우리 집 지게는 내가 지면 작은 턱이라도 지게 다리가 걸려서 넘어지기 일쑤다. 이럴 때 빈 지게면 탈이 없겠지만 짐을 짊고 둑을 내려가거나 울퉁불퉁한 길을 걸을 때면 꼬꾸라질 것이 뻔하다. 이를 생각하면 진땀이 난다. 그래도 간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신경을 낫의 날과 맛 닿아있는 풀포기 밑에 쏟지 않으면 날은 여지없이 내 손가락을 넘볼 것이다. 한 움큼 한 움큼, 금붙이를 모으듯이 베어나갔다.
조급한 마음에 마(魔)가 비집고 들어왔다. 이제는 어지간히 한 짐 될 거라고 하는 마음이 수없이 내 마음을 흔들어서, 내 머리를 뒤로 돌리고 확인하려 했다. 한순간 낫 날은 내 왼쪽 검지를 스쳤고 난 소스라쳤다.
뼈가 허옇게 드러나고 뭉클하게 피가 솟는다. 오른손으로 감싸서 꼭 쥐어 압박했다. 그저 피를 보기 싫었고 그렇게 하면 살이 붙을 것 같았다.
기차 소리가 들리고 한 소년이 승강(乘降) 계단에서 옷자락을 날려가며 손을 흔들어 준다. 다복한 소년 같아서 부러워서가 아니고 지금 내 손을 흔들어 답할 수가 없어서, 멍청하니 또 시골 소년이 돼야만 했다. 옷을 찢어 동이고 기어이 소먹이 꼴짐을 만들어 왔다. 결코 빈 지게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날이 무디어 풀포기에 머물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올라오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한 그 산만함을 죽을 때까지 경고하는 증표로서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손톱에는 경고의 글귀가 새겨 있다.
내 왼손 검지는 내 눈앞에서 언제나 말한다. ‘침착해야 한다.’ 검지 손톱은 내 눈앞에서 쉬지 않고 경고한다. ‘넘치지도 말고 못 미쳐서도 안 된다.’ 살아서 움직이는 채찍이고 교훈을 새겨 자라는 손톱이다.
그래서 내 몸도 내 영혼도 이제까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나 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