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외통넋두리 2008. 6. 2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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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1596.010128 양복

 

내게 부각되는 아버지의 상이 여러 가지 있지만 대략 세 가지로 나뉘어 떠오르는데, 그중 단 한번 본적이 있을 뿐인 양복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의 모습은 늘 일하시는 모습이고 간혹 나들이하실 때 한복 두루마기와 중절모자에 흰 고무신인 것, 이것이 내가 본 또 한 면이시다. 아버지는 자수성가의 운명을 타고 나셨으니, 태어날 때부터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어쩌면 할머니의 한을 풀어 들이려야 할 무거운 일생의 짐을 스스로 질며지고 태어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청운의 꿈이 이루어질 그 날을 기다리질 못했으리라. 하여 고고의 성이 울린 다음날부터 아버지의 고생길은 시작되었다.

 

철이 날 때까지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서당문턱을 넘나든 것이 고작이신 아버지의 유년시절은 손이 닳고 발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뛰었으리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가, 아무려나 세월은 무심하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노력에 하늘이 동했던가, 사들인 논밭전지는 늘어가서 종손으로서의 자리가 굳어지고 일가의 인증으로 울을 점점 넓혀 나갔다.

 

둘은 잃었으되 나머지 우리 오 남매를 거뜬히 키우신 우리부모와 한 많은 청춘을 홀로 지키신 할머니의 영령께 고개 숙여 잠시 눈을 감고 명복을 빈다.

 

 

이제 이순의 나이를 내일모래로 바라보며 아버지를 추모하는 마음 애절하여 눈감고, 내 앞에 양복 입으신 아버지를 모셔본다.

 

까만 전신주의 골탈 칠이 방울져 녹아내리고, 발가벗은 개구쟁이들이 신작로 양쪽의 도랑에서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히고, 제비들이 이제 막 둥지의 새끼에 먹이주기를 끝내고 전신주에 줄줄이 앉아서 쉬고 있다. 태양은 양철지붕을 녹여 불을 낼 것 같이 내리쬐고 한껏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늘어진 나뭇잎으로 만들어낸 나무그늘을 두텁게 칠하듯 퍼부어 댄다. 나뭇잎을 뚫지 못한 햇볕은 매미들의 그늘 찾기를 감당할 수 없는 듯 실 빛을 땅위에 꽂는, 뜨거운 여름 오후다.

 

 

나, 이제 막 친구와 헤어지고 들어 닥쳐서 찾는 곳은 물가였다.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고 싶다. 소나기라도 퍼부었으면 좋겠다.

 

길바닥에 물을 퍼부어 자갈길을 식히면 찌는 열기라도 누그러지려나. 등줄기를 타고 비지땀이 흐른다.

 

이마에 솟는 땀방울을 훔치며 양은대야를 들고 한길 가 도랑에서 물을 퍼서 한길바닥에 막 끼얹으려는데 하얀 옷을 입은 걸출한 키, 인도인 같은 분이 눈에 들어온다. 멈추었다. 가까이 다가오셨다.

 

백옥같이 다듬은 무명옷감을 정성 들여 지은 듯, 솔기마다 둥글게 마무리 짓고 바늘땀은 촘촘하여 수를 놓은 듯 실눈이 박혔다. 문어발 빨판같이 커다란 단추가 섶을 들뜨지 않게 조용히 갈아 앉히고 있다. 깃은 널찍하고 길게 패여서 양복의 멋을 한껏 내고 있다. 시원한 삼베로 안감을 댄 표가 소매에서 들어 난다. 팔소매는 대나무토시를 낀 듯, 안감 속에 바람이 지나 다니다 식어서 이 바람이 다시 소매로 들어가 덜미로 나오는 듯, 시원하게 들려있다. 속에 받쳐 입으신 노란 삼베옷의 깃이 하얀 양복 깃 위에 덮여 나와서 그 연한 이색 감이 눈 같이 흰 양복에 무게를 주어 지탱하고 있다.

 

긴 팔과 긴 다리에 드리운 무명의 질감은 누가 보아도 시원하고 훤칠한 키를 돋보이게 한다. 손과 얼굴의 색이 흰 양복에 대조되어서 더욱 검붉게 보여서다. 이런 아버지를 누가 보아도 ‘양복쟁이’로는 보지 않을 성싶다. 한껏 차려 입으신 아버지의 관청나들이에 아쉽게도 모자와 신발이 아버지의 품위를 흠가게 했다.

 

밀짚모자에 ‘게다’ 다, 이런 것들 모두가 당시의 사정을 말이라도 하듯이 반영되었다. 곧은 촌부의 관청나들이 최첨단복장이다. 비록 백구두는 못 신으셨지만.

 

이날까지 아버지의 양복차림을 보지 못했던 나는 놀랍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나들이 중절모자는 두꺼운 회색의 겨울용이니 삼복더위에 이것을 쓸 수 없어서 부득불 밀짚모자를 쓰셨을 것으로 여기면서도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게다’는 일인 치하에서 관청나들이의 대표적 보증수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고무신을 신으시고 시대의 물결 한복판을 헤엄치시는, 살아 계시는 시대적 촌부이시다.

 

누가 뭐래도 그 시대를 또렷이 사시다 가셨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단숨에 못 삼키고 목에 걸려 생겼다는, 유난히 툭 튀어나온 턱밑 목뼈는 어릴 때 내가 아버지께 응석부리며 만졌던 그대로다. 아버지의 상징이신 오뚝하고 높이 솟은 콧날과 오목한 눈을 갖이신 용모도 흰 양복을 입은 다음날부터 다르게 내 머리에 새겨졌다.

 

이제 그려본다. 흰 무명양복, 코, 눈, 얼굴색이 어우러져서 감히 인도의 네루 수상이 아버지를 빼 닮았구나. 아버지가 앞서 사셨기 때문이니 과히 나무라지 말지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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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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