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집

외통넋두리 2008. 9. 1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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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집

5483.021010 전망 좋은 집

 

바다가 가랑이사이로 높게 솟더니 구름과 함께 하늘을 밀어 올리면서 흔들거린다. 바다는 구름을 뜬 채 빙그르르 돌면서 밀쳐내고 잿빛 검은 ‘희억섬’을 가랑이사이로 끌어들이는가 싶더니 다시 올려서 엉덩이 뒤로 숨겨 없애든 참에 그만 요동치며 구름과 섬과 함께 모두 내 사타구니를 스치며 사라지고 말았다.

 

발바닥을 간질이며 스르르 밀려 내리든 물밑 모래가 멈추었을 때에 물은 정강이를 넘어서 머리를 삼키며 꼴깍 입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덤덤한 민물이었다.

 

이번엔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둘러본다. 하늘밑에 있는 모든 것은 조금 전과 딴판으로 보이고, 보이는 모든 것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요지경세상은 내 가랑이 밑에서 생겼고 나 혼자 만의 세상이었다.

 

쌓아 올린 모래 둑으로 내 마음대로 물길을 돌려서 바다와 잇는 수로변경 공사는 요지경속의 세상과 이어지는 지구(地球) 요동(搖動)의 공사였다.

 

아무런 보상도 찬사도 바라지 않는, 단지 나와 또래의 즐거움이 한껏 오래 이어지길 믿는 역사(役事)였다. 비록 큰물에서 따온 실오리줄기 물이지만 수로를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 이 물은 모래를 헬 수 있게 맑고 모래알을 굴리도록 힘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본줄기보다 더 빠르게 바다로 흐르면서 우리를 신나게 했다. 파도에 밀려서 뭉개지는 수로를 보면서도 마냥 즐거웠고 파도 따라 쓸려 가는 내가 쌓아 만든 둑 모래에도 아쉬움은 없었다. 그리고 바닷물이 되어버리는 내 수로의 민물이 줄기의 여느 강물보다 더 내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 것은 내 가슴속을 흘려서 바다로 보내는 순수한 민물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일단의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우리의 수로를 밟아 망가뜨렸을 때의 순간적 분노는 달려가서 가랑이에 매달려 물어뜯고 싶지만, 곧 파도소리에 묻혀 물거품이 되는 세상, 바로 보는 세상에서의 내 마음, 이것이 세상인 것을 그때엔 미처 몰랐다.

 

비록 열 손가락이 달린 손으로만 만들었고 한 바가지의 물을 흘릴 수 있는 적은 수로지만 우리에겐 천하를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보람찬 봇물이었기에 그렇다.

 

 

어릴 때 가랑이 밑으로 본 세상이 훨씬 역동적이었다. 이렇듯 세상은 보기 나름으로 다르다는 것을 몇 번이고 느끼며 살면서도 가끔은 내가 보려는 위치를 잊고 남이 보는 위치에서 세상을 볼 때 온통 마땅치 않은 것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마땅한 예비(豫備)책은 없는가보다.

 

나는 지금 가랑이 밑으로 바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똑바로 서서 적막감 감돌아 숨 막히는 현실에 직면해있는 것이다.

 

삼 개월의 장기입원 탓으로 엉망이 된 집에 돌아온 아내는 분통(粉桶)처럼 아담한 집을 팔 기색을 보였는데, 아마도 이웃한 내 친구와 그 가족에게 민망한 생각에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의외의 제의에 나는 놀랐다.

 

그대로 흘리려고 했으나 이미 빌려 쓴 만만치 않은 입원비를 갚을 길은 여전히 막막하다. 그렇게 얼마동안을 뜸 드리다가 입 밖으로 새듯이 흐르는 말인즉 서울에 전망 좋은 집이 있는데 그 집을 잡으려거든 전화로 기별만 하면 동기간 한 분이 계약 할 것이라며, 청원하는 아내의 눈빛이 거의 동정을 구하는 어린이와 같아서 나는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아내는 유리병 속의 갓난이 티를 벗지 모하고 있다. 나는 아내의 탐탁하지 않은 병일지라도 방법에 주저하지 않고 적극 치료해 주어야하는, 애정과 연민이 차례로 차곡차곡 차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산의 동쪽자락 미아리 고개를 넘고 다시 북쪽으로 뻗은 다른 한 줄기의 언덕배기에 벌집처럼 엉겨 붙은 판자촌의 한가운데에 정 북향의 삼 칸 집을 한참을 들여다보던 내 죽지는 처지고 동공은 비어, 그대로 가라앉을 것 같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렇게 경관이 좋다는 집터는 등산길에 잠시 멎어 바라보는 ‘백운대’와 ‘인수봉’의 운치에 다름 아니다.

 

지금 나는 등산길에서 바라보지 않고 내가 앞으로 살아갈 집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천신만고 끝에 얻은 대구의 집을 그리며 그 연장의 선에서의 집을 마련하는 것이지 결코 주거(住居)의 절대조건에 경관이 우선할 수 없을진대 여기는 주거 최악의 조건임을 직감하지만 아내의 병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까짓 내 육신의 불편은 고스란히 달게 참을 것으로도 될법하여 망설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용납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판단의 근거와 가닥을 깊숙이 헤치고 찾느라고 눈을 감고, 앞으로의 거셀 풍랑을 짐작하며 한숨을 내쉬지만 이런 것 또한 아내의 눈치 밖의 처신이다.

 

나는 우리 식구가 살집을 원하지 풍유를 즐길 여유는 없다. 북망산(北邙山)을 바라보며 낙양의 세도가가 읊은 심경은 아닐지라도 왠지 북적이는 인간세상을 떠나서 멀리 산천의 초목과 암괴(巖塊)로 빨려 가는 고적(孤寂)감을 씻을 수 없었다.

 

이제 ‘대구의 앞산’의 푸른 잎사귀가 ‘인수봉’의 하얀 바위 위에서 아무런 저항도 없이 미끄러져서 떨어지는 현실을 실감하고 발길을 돌린다.

 

내 가랑이 밑에서 요동치던 세상은 단 하나, 내가보는 세상이었을 뿐이고 남은 그렇지 않은 것, 보기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가치기준을 아내의 관망으로 또 한 번 실감하며 아내의 만족이 내 즐거움으로 다가오길 애써 기다려본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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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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