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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인생 2008. 9. 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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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포획(捕獲)을 사진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진을 얻지 못한 만상은 과연 시간의 흐름, 시간의 강에 그냥 빠져 떠내려갔는지 아니면 시간과 함께 영원히 정지되었다고 해야 할 것인지 아리송하다.

 

모든 피사체는 그대로일 수 없다는 바탕 위에서만이 사진의 의미가 살아나고 사진을 보는 사람 또한 예외일 수 없으니 피사체는 반드시 변화하는 사상(寫像)을 갖고 있다고 이르겠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사진을 얻지 못했으니 감성을 담은 차원 높은 변화는 아니더라도 외형상의 변화를 가름 하지 못한 상태로 철이 들었다고 하겠다.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남다른 재주가 없다면 그냥 묻혀버리는 것이 온당하다는 이치를 일찍이 사무치게 느끼신 부모님의 철저한 생활지침이셨는지는 모를 일이다. 내 어릴 때의 사진이 또한 없다.

 

살기만 노심초사하신 우리 부모님의 생애를 보는 것 같아서, 내 어린 시절에 대한 부모님의 아픈 상처를 파헤치는 것 같아서, 한마디 묻지도 못하고 혼자만 새기며 어린 날을 보냈다.

 

그런데 우리 집 말고는 집집마다 한두 개의 사진액자가 걸려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낮은 천장과 맞물려 방을 내려 보게 걸려있다. 그 액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밤낮으로 그 집 식구들은 내려다보는데, 그런 집에 이따금 놀러 가 보면 발을 돋우고 그 집 식구들의 옛날 모습을 오늘에 읽는, 작은 즐거움조차 있었지만 우리 집은 그런 액자를 달 여유조차 누릴 수 없었던 절박한 살림과 단절된 한 때를 말하듯이, 담을 수 없는 무언의 증표로써 ‘사진 없음, 그래서 액자 없음’을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이, 천장 밑의 네 벽 아귀는 내 눈을 허전하게 해서 속상한 적도 많았다.

이렇게 나를 돌아보는 까닭은 이제 내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인데 이런 일깨움도 역시 삶의 작은 부분이라고 여겨서 뇌어볼 수밖에 없다.

 

흡족하고 알찬 시절을 보내야 했을 때를 사진 때문에 마치 한 귀퉁이가 뭉그러진 빈 액자를 손에 쥐고 옷자락 속에 감추듯 살아온 정서적 빈곤이 나에게 미친 영향은 적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 또한 불모(不毛)의 땅을 일구려 빈 두 주먹만을 믿고 몸부림치다보니 내가 겪은 전철(前轍)을 되밟고 있었다. 더하여, 불어 닥친 환란(患亂)을 막지 못하고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가는 나날에 넉넉한 마음을 갖지 못했거나 틈을 내지 못한다는 엉뚱한 핑계로 나의 어린 시절의 느낌을 대물림하고 있었다.

 

사진 찍을 때를 노친 아이는 이미 훌쩍 커버렸다. 장차 이 아이가 제 어릴 때 사진을 찾는다면 그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무심한 아비의 작은 실수로 얼버무릴 수 없음을 왜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말이다. 그러나 내색을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애들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만 종국에는 아쉽고 아쉬운 지난 한때의 시간을 손에 들지 못하고 남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제 어렸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세대를 몰아 한꺼번에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산다는 것은 음미(吟味)하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딸이 자기를 알게 될 때에 잡히지 않는 곳에 날아간 자기의 한 단면을 찾아서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펴서 쫓은들 그때마다 그만한 먼 거리에서 잡히지 않을 것이다.

 

자기의 허울을 안타까이 확인하고픈, 그 마음을 헤아려서 왜 진작 몸부림이라도 처서 딸아이의 삶의 한 순간을 매어두지 못했나 싶어서 못내 아쉽다. 무어라 말할 것인가?

무슨 말이 이치에 닿을 수 있단 말인가? 폭과 두께와 높이 길이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무게와 질량이 어떻게 근처엔들 갈 수 있으랴싶은, 딸애의 찍지 않은 사진의 값어치다.

 

왜 진작 여기까지 생각을 못했는지,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살지 못했는지, 그 까닭을 나도 모르겠으나 그것도 내 식이고 우리 집 내림의 틀인 줄 알아서 삭힐 수밖에 없다. 이런 핑계조차 아무런 소용없는 한 삶의 진수를 오늘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때에 가지고 있는 자기의 모든 역량을 모두 나누어서 그 시간에, 그 순간에 자기의 전 생애를 통한 최대 가치를 찾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는 일이 최우선의 할 일인 듯싶다. 헌데 그것이 쉽지 않아서 늘 허탕으로 지샜다. 하물며 색이 있어서 보이는 것도 아니고 형체가 있어서 더듬을 수도 없고 맛이 있어서 혀끝으로 느낄 수 없는 마음을 담는 것, 이런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열일을 제치고 네 활개를 치고 다녔을지라도 지나 놓고 보면 그 때의 한 귀퉁이라도 어떻게든 음미 할 수 있는 한 방편이 곧 사진이라고 여겨지니 더욱 억지로 축소해서 내 마음을 달래보려는 허전함, 무진(無盡) 아쉬움이다.

 

문화인의 척도인 양, 유행하던 ‘진짜 같이 베낀 그림’이랄까 아니면 ‘물건의 모양을 그대로 그리어 낸 것’이라는, 이것은 비록 얇은 종이 한 장에 지나지 않지만 적어도 겉모양의 흔적만은 확실하게 그려내고 있으니 이 작은 표현조차 하지 못한 어리석은 삶이 한으로 남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잡아두지 못한 한 때를 잡아매어 놓았던들 내가 영구히 보지 못하는 그 것은 내겐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또한 작은 위로를 얻는다.

 

한편, 우리의 모든 것을 영속적으로 빠짐없이 필름에 담아 관리할 보이지 않는 능력자가 있어서 우리의 단편적이고 일순의 기록 사진이 무의미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또한 적이 위안이 된다.  잃어버린 내 흔적, 잃은 딸 뒤에 믿음으로 태어난 딸 ‘앙’의 어릴쩍 흔적이 없어 못내 아쉬워 그 상, 모습을 더듬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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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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