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어눌하고, 자기는 희생하면서도 남의 일에는 앞장설 것 같은 느낌을, 첫 얼굴에서 볼 수 있었다.
내 생각은 들어맞았다. 그 일가분은 자기 일인 것처럼 방 가득 차 있는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누렇게 절은 책을 뒤지면서도 손놀림은 밖에 앉아 있는 나를 생각하는 듯 잽싸게 움직였고 순식간에 내게 필요할 것 같은 모든 자료를 끄집어내 왔다.
남대문 북쪽을 따라 난 성곽이 있었을 것 같은 지점에 촘촘하게 들어선 집 틈에 낀 삼 층짜리 낡은 목조건물의 삐걱거리는 층계를 올랐을 때는 작은 희망조차 무너질 것 같았다. 낡은 집의 알지 못할 내력이 나의 이 집을 찾는 내력과 혼합돼 무겁게 나를 눌러, 나의 조상 찾기 희망은 아예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었다.
밝은 빛이 있을 수 없는 그날에 그분은 나를 그나마 편안하게 했다.
앉아서 곧 가라앉을 것 같은 무게로 뿜는 내 한숨에 ‘강우’ 씨는 오히려 내가 민망할 정도로 분주히 서둘렀다. 이것저것 꺼내 오지만 내겐 이미 수십 번씩 읽어온 그 족보 책들이다.
십 년이 흐른 뒤에 ‘이천서씨 대종회’ 간판을 따라 ‘용산’으로 갔으니, 그의 일가 사랑은 가히 짐작이 간다. 아마도 그는 남은 삶을 족보 찾기로 헤매는 일가를 돕기로 작정했을 것이다.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는 그의 손길에서 진한 피의 연대를 더없이 느낀다. 그는 어쩌면 십 년을 넘게 헤매도 제 조상의 가닥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 연민의 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하여 제 뿌리를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일까? 부모도 없고 고향도 없고 다만 육신만 있는 멀쩡한 부랑아로 여겼으리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낯이 뜨거워진다.
마땅히 알아야 할, 알고 있어야 할 것을 모르고 있으니 지탄(指彈)하고, 더하여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지 자기가 더 몸 닳아, 이리된 나의 전부를 알고 싶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 틈에서 차근차근 갈피를 이어가던 그의 끈기에 난 경의를 표한다. 비록 뜻한 대로 이루지는 못했을지라도 그의 됨됨이는 우리 일가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나보다 나이는 덜 먹었으나 우리 서문 일가 내력의 통달은 나를 기죽게 했다.
이름은? 성은? 본은? 아버지 이름은? 할아버지 이름은? 집은? 식구는 몇?
이 물음은 누나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는 날, 나도 간다며 악쓰며 울던 내게 ‘내년에 보내마’ 하시면서 달래시던 아버지의 물음이었고, 그다음 물음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으로만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아버지의 그다음 이어진 가르침을 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집어 팽개친 것이 틀림없으리라!
아니라면, 이토록 모멸감마저 들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욕심처럼 부렸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을!
가슴을 치고 통탄하여도 아버지는 만날 수 없고, 그 길도 열리지 않았으니 어찌하랴!
이 일을 입 밖에 낼 수 없는 수치, 이는 무단으로 아버지 곁을 떠난 죄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제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한 업으로 여겨서, 이렇게 감수할 수밖에.
일가분의 얼굴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아무런 이 소득도 생각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챙기고 일러주는 그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얼을 찾아보려 몸부림치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밤이 가고 날이 새고 새날이 와도 마다하지 않고 뒤질 것 같은 자세로 자리를 고치고 잠시 손을 놓고 말한다.
‘종씨 이런 일은 조급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월을 두고 해결해야 합니다.’
난 아직도 헤매는 중이다. 세월을 매어놓지 못한 채!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