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56.040207 구경
마주 보이는 저 수평선 너머에는 어떻게 생긴 땅이 있으며 거기는 어디일까? 생각하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눈을 남쪽 해안을 따라 끌어가면 바다와 하늘과 땅이 맞닿으면서 눈썹 같은 ‘솔 섬’이 가로 떠서 움직일 듯 말 듯 한다.
눈길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거기엔 가슴 설레는 미지의 세계가 있어 그리웠다. 다시 바다를 삼키면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북쪽을 바라보면 멀리 ‘금난’의 ‘연대봉’이 시야에서 가물가물 물위에 떠서 하늘을 이고, 말로만 듣던 함경도 땅이 있을 것 같은 그 너머에 시베리아로 이어가는 벌판이 있어서 꿈속에 그리는 할아버지가 있을 듯, 눈감아 명상했다.
우리 동네 제방 끝에 서서 내 앞날을 생각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렇듯 미지의 땅을 동경하던 어린 시절을 지내다가 어느 날 세상 밖으로 튀어 나와 고삐 풀린 망아지 모양 달려서 한 바퀴 휙 돌아왔는데, 그만 시간이 너무나 흘러서 이제 철조망을 넘을 수 없게 되었다.
한 순간인 한 생이 기울었으니 어머니는 어찌 되셨는지! 이승에 계시는지 저승에 계시는지! 그 것 조차도 알 길이 없으니 요놈의 세상을 탓해야 할지 내 못난 짓을 탓해야할지, 탓으로만 돌릴 수가 없어 절통할 노릇이다. 지금 입으로 천만 번을 외친대도 어머니는 듣지 못하시고, 억겁(億劫)을 살면서 갚아도 못다 할 자애로운 우리 어머니의 정을 잊을 수가 없어서 몸부림 처도 어머니는 나를 볼 수 없으시다.
애달픈 사연, 그래서 고작 생각한 것이 내가 본 이승의 곳, 어머니가 생전에 못 보신 이승의 곳, 내가 살아온 곳이라도 구경시켜드리고 싶은, 불가사의로 나를 이끌어 가 잠시 시름을 놓는다.
흐려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내 마음을 죈다.
눈에 가득한 바다를 힘껏 들이키면서 희망을 삼켜보든 그 제방 둑 위에 이제는 설 수가 없다. 뿐더러 그때의 정경을 바라볼 수도 없다. 단지 바다와 들과 산을 무대로 우리를 위하여 동분서주하신 어머니께 향한 내 마음만은 짜릿하게 그때로 남아 그 제방으로 나를 옮겨간다.
우리를 키우시느라 백 리 밖을 못 나가신 어머니시다. 그러면서도 우리 남매들이 심한 병이라도 앓을라 치면 이름 난 의원을 찾아 인근 마을과 마을, 읍과 읍을 찾아 도셨다. 왜 아니 발이 부르트고 마음 조이지 않았으랴! 태산 같은 걱정에 경황없이 헤맸으면 헤맸지 곁눈인들 한번 흘릴 수 있었으랴! 구경은커녕 세 끼니 진지인들 제대로 잡수셨겠는가?! 애절한 마음 가슴에 안고, 긴 한숨에 고름을 날리시며 잰걸음 치마 바람에 산머리의 나뭇잎만 흔들었으리라!
어머니는 당신이 아시는 세상에서 한껏 당신의 날개를 펴시고 사셨다. 당신의 발이 닿는 곳이 이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고 당신이 생각하시는 세상을 요것뿐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시야를 넓혀 드리고 싶은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 발이 닿는 곳만큼 만 세상으로 아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세상을 한껏 누비셨다. 그것은 당신의 생각에 당신 발이 미치지 못한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의 온갖 것을 체험할 기회를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기 때문에, 남들과 같이 아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시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어느 날 한 마디 말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머니는 세상을 넓히려 드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산산이 분해되어 어머니께 밀착됨을 느낀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를 알아 호흡으로 나를 들이 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 할 나위 없는 효행이 되련만 나는 무거운 육신을 이끌고 있으니 그것조차 안 된다. 이 육신이 할 수 있는 것, 곧 어머니를 마음으로 모셔와 여행을 시켜드리면서 나의 애절함과 불효를 때워 메워보려, 잠시 허망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공허한 생각만이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동해안 어느 돌출부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눈을 끌어 가다가 끝난, 바다와 육지와 하늘이 맞닿은 곳, 그곳에 가서 목이 터질 때까지 어머니를 불러보았으면 좋겠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지금 어머니께서 앞에 나타나신다면 묻지 않고 어디론가 함께 가면서 지난날을 사죄하고 어머니의 세상을 마냥 넓혀 드리고 싶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