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늘도 나는 연극을 했을 것입니다. 거짓 웃음, 거짓말, 거짓 행동을 스스럼없이 꾸며대며 다른 사람의 것일지도 모르는 대본을 마치 내 것처럼 외고 다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기저기 남아있는 붓 자국을 지워 낸다고는 했지만, 아직도 내 얼굴의 어딘가에는 깜박 잊고 지우지 못한 분장의 찌꺼기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 자국 그대로 나는 잠이 들 것이고, 눈을 뜨자마자 또 정신없이 집을 나설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관객도 없는 텅 빈 무대에서 무엇을 잡자고 이리도 허우적거렸는지.
모처럼 거울을 봅니다. 많이 변했다는 게 대번에 느껴지지만 어떻게 변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조차 비춰 주는 거울이 없다는 것은, 그래서 퍽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만일 우리 앞에 마음조차 비쳐 주는 거울이 있다면 그때도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을까요.
/ 이정하 - 문학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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