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남녀들에게 물었다.
˝만약 당신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게 과거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한 잘생긴 친구가 대답하기를
˝과거는 용서할 수 있는데 못생긴 건 용서가 안 되는데요….˝
요즘 미인 미남이 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어쩌면 새벽이슬의 표지모델 들도…. ^^ 그들을 세우는 것은 미인 미남이 최상, 최고의 것을 상징하고 있기에 제품의 품격을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광고 심리학의 축복 미소는 이 제품을 사용하기만 하면 모두가 늙지 않고 주름도 안 생기고 스타일도 확 살아날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인기인은 미인 미남이고 그것은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신화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살을 빼기 위한 열정이 과연 건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육체를 향한 신화에 몸과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닌지 우리는 돌아보아야 한다. 미디어의 세계는 많은 우상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 우상들의 근본 된 우상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바로 육체에 대한 신화이다. 육체의 신화는 우상 중의 우상이다. 이런 점은 오늘날 젊은 그리스도인에게서도 별개가 아니다.
한 기독교 대학에 자매들이 많은 과에서 질문을 던졌다.
˝결혼의 중요한 조건이 무엇인가?˝
그런데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요즘 자매들이 아무래도 외모와 경제 능력에 관심이 있으니까 예전과 다른 답이 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대부분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
이었다. 오히려 당황한 교수님이
˝혹시 학벌이나 외모와 경제 능력은 중요하지 않나요?˝
하고 묻자
˝에이 교수님 그건 기본이지요….˝
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신앙은 외적인 요소 위에 다홍치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이 기본이고 외모가 다홍치마가 아니라 외모는 기본이고 신앙이 다홍치마라는 생각이 들면서 변해 가는 우리의 가치관을 보는 듯해서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형제들은 더하다. 예쁘고 발랄한 불신 자매와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교회 다니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다. 교회 안에 성실하고 순수한 자매는 재미없다는 식이다. 불신 형제를 사귀게 되어 어떠하든지 교회로 인도하려는 자매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때로는 화가 난다.
(중략)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향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과 가룟 유다의 모델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격과 내면이 무너질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이었던 형제는 가장 어두운 인생, 무너진 인생의 전형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인생의 가치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참된 인간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인간다움 그 자체에 있다. 성경은 인간다움에 대해 2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을 찬송하고 영화롭게 하며 즐겁게 하도록 부르셨다.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예배의 현장 속에서 창조주를 영화롭게 하며 찬양하는 삶에 서 있을 때이다. 찬양 그 자체가 되며 찬양의 도구가 되는 자리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은 참된 의미가 있다. 레나 마리아와 송명희 자매를 보았던 필자의 경험은 아름다움의 본질이 이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아름다움은 속사람의 아름다움이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마음에 숨은 사람을 단장하는 것 그것이 참된 아름다움이다.
둘째. 인간다움의 본질은 노동이다.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창2:5)˝
를 볼 때 이 땅에 인간을 만드신 이유는 ˝경작(Cultivate)˝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노동을 타락의 결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노동은 인간 창조의 이유이며 인간다움의 근원이다. 타락은 노동의 소외를 초래한 것이지 노동 자체는 창조의 이유이다. 그러므로 인간다움은 노동자로서 일하는 제자들이 될 때 그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아름다움은 참된 노동의 기쁨을 실현하는 자리에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민중가요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죄와 인간의 소외 그 속에서 분명히 보는 인간의 죄성을 숨기고 포장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껍데기이며 가면이다. 하지만, 창조의 인간다움을 추구할 때 인간의 아름다움의 의미는 더욱 분명하다.
˝껍데기는 가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라는 진보의 말투와 노래가 동물 가죽옷을 입어야 할 우리의 입장에 더 가깝다는 현실에 우리는 긴장해야 한다. 세속주의에 물든 이 땅의 교회들이 보지 못하던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관을 어쩌면 그들은 우리보다 더 잘 보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예배자와 노동자로서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새벽이슬 -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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