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면서 껌을 씹었다. 딱새처럼 입안에 갇힌 껌은 절구 돌 같은 이빨에 눌리워 ´딱딱´ 소리를 내며 울었고, 요술 주머니처럼 이 구석 저 구석 숨어 있는 잡스러운 것들을 흔적도 없이 감추었으며, 혀와 작당을 한 껌은, 입김을 불어 모아서 풍선에 거리에 놓았다가, ´뻥뻥´거리며 순식간에 공기 속에 날려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껌을 씹던 철부지 내가 고무처럼 탄력 있게 시간의 기계에 잡아당겨져 어느새 길고 굴곡 있는 몸으로 변하여, 사춘기의 길로 접어들자 예민한 감성으로 이성에 대한 공상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저녁, 우연히 엿보게 된 한 연인들의 서글픈 이별의 장면에 충격을 받고 그동안 껌으로 인해 즐겼던 순수한 상상력은 순식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는 길을 내다보려고 격자창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 서산을 막 넘어가고 있는 붉은 해의 기운을 얼굴에 받으며,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책 몇 권을 옆구리에 낀 옆집 미숙이네 집에 세 들어 사는 총각 아저씨와 아침에 학교에 갈 때 골목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그 아저씨의 애인이라는 여자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오더니 내가 있는 창 아래에 멈추어 섰다.
순간, 나는 그들이 나를 볼 수 없도록 창에서 얼른 떨어져 벽에 붙어 서서는, 그들은 나를 못 보고 나는 숨어서 그들을 몰래 지켜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흥분되었다.
그때 당시 내 호기심 중 하나가, 사랑하는 연인들은 대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달콤하고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지 무척 궁금해했으므로, 나는 두 귀를 바짝 세우고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기 위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한참이나 아무런 말도 안과 있었으므로 혹, 가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밖을 내다보기 위해 창 한쪽 귀퉁이에 쪽 눈을 살짝 갖다 대려다가 기겁을 하고 숨어 있던 자리로 냉큼 돌아왔다. 왜냐하면, 그 총각 아저씨가 대뜸,
˝대체 나더러 어떠하다는 거야? 정말 이럴 거야?˝ 라고
쥐어짜는 듯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벽 뒤로 붙어 숨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움찔 놀라서 헉하고 숨통이 지르려던 비명을 틀어막았다.
그런데,
그 아저씨의 목소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작고 힘없는 목소리가 웅얼웅얼 들리기 시작하자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밖을 내다보았다.
아저씨의 애인인 그 여자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된 채 훌쩍이고 있었고, 총각 아저씨는 늘 그러하듯이 뾰족한 턱을 촉새처럼 이리저리 움직여 대며 한쪽 볼때기를 찌그려 같은 쪽 입술을 치켜올린 채 이를 드러내며 쩍쩍~ 쉬지 않고 껌을 씹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으로 보아 총각 아저씨와 그 여자는 이별 중이었던 것 같았다.
드디어 총각 아저씨가 쌀쌀한 말씨로
˝다시는 날 쳐다보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마·이젠 끝이야.˝라고
말하며 씹고 있던 껌을 ´퉤´하고 뱉고는 미숙이네 집으로 들어가 버렸고, 그녀는 마치 석고상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사라진 그 총각 아저씨가 다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하고 서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당시 나는 미숙이네 집에 갈 때마다 총각 아저씨를 자주 보곤 했는데, 그 아저씨는 내가 볼 때마다 늘 껌을 씹고 있었다.
그런데 그 껌을 씹는 방법이 요즘 나오는 ´유쾌한 씨의 껌을 씹는 방법´의 노래 가사처럼 윗니, 아랫니, 앞니, 어금니, 송곳니, 사랑이를 다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 뾰족한 턱을 맷돌 돌리듯이 돌려가며, 한쪽 볼을 찌그려 입술을 말아 올린 채 이를 허옇게 드러내며 오직 껌을 씹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그렇게 껌을 씹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씹던 껌도 미숙이 엄마가 고구마나 감자를 쪄내오면 씹던 껌을 입술 사이에 놓고 혀로 툭 차 내밀며
´퉤!´
하고 마당 아무 곳에나 뱉어버리곤 하였다.
총각 아저씨가 그렇게 껌을 씹고 뱉을 때마다 나는 괜스레 기분이 찝찝해져서 아저씨를 남몰래 흘기며, 단물 열심히 다 빨아먹고서 즐길 거 다 즐기고 버릴 때는 눈곱만큼도 미련이 없이 아무 곳에나 퉤 뱉을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을 사귀는데 있어서도 그럴 수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난 족집게였다.
내가 문득 총각 아저씨의 껌 씹는 모습을 보며 한 생각은 바로 총각 아저씨의 인격과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걸 확인시켜준 사람은 다름 아닌 미숙이였는데, 후에 미숙이에게 들은 말로는 총각 아저씨는 그녀와 깊은 관계까지 맺고 지내다가, 조건 좋고 여건 좋아 여러모로 더 낳은 사람이 새로 생기자 껌 뱉듯 퉤~ 하고 돌아서 버린 것이었다.
글쎄. 그 당시 중학 3학년의 머리가 뭘 알겠는가 하겠지만, 난 총각 아저씨가 껌 씹는 모습을 보고 미리 점을 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 후, 나는 점점 껌을 씹느라고 턱을 방정맞게 움직이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졌다. 그래서 껌을 씹게 되면 마치 껌을 안 씹는 듯이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턱을 움직여가며 껌을 씹었고 차츰차츰, 껌의 단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맛난 책을 들추며 그 속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 달콤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사색하였고, 고독을 잘근거리며 고상하고 성숙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씹기 위해서 껌을 사기보다는 문화인이 되기 위해 껌을 샀고, 그것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며, 식사 후 음식 냄새에 신경이 쓰이거나,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는 껌을 씹었고 곁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적당히 인심도 쓰곤 했다.
*~ 불행히도
내 생각대로 총각 아저씨의 인격이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껌을 씹는 사람의 모습에다 엉뚱한 선입견을 품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 버릇은 전철 안에서나 공공장소에서 껌을 씹는 사람들을 훔쳐보며 남몰래 그 사람의 인격을 점쳐보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그런데, 내 남편의 껌 씹는 모습도 그리 얌전하지는 않다. 하지만 남편은 그래도 껌을 뱉을 땐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리는 착함이 있으므로, 혹시 나와 헤어져야 할 일이 생기더라도 위자료 두둑이 주고 뒤처리는 깔끔하니 잘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런대로 여유를 부리며 산다.
*~아카시아 껌 1
디자인이 예쁜 겉옷과 은빛 나는 속옷을 입고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사망일이 정해진 운명
망나니에게 선택되면 휴지통에 버려달라는
짧은 메시지 전하여도 단물 쪽쪽 빨리고 나서
아무 데나 퉤 뱉어지는 그대는 아카시아 껌
*~아카시아 껌 2
그대 향기는 짜릿짜릿
들 쉼 날 쉼에 묻어나와
초속 수백 킬로 속도로
눈과 귀를 먹게 만들고
오물오물 턱을 움직여
단물만 쪽쪽 빨게 한다.
향기로 유혹하는 그대
은 비단 속옷 풀어 헤치고
가루분 묻힌 속살을
여기저기 짓눌러대도
짧은 만남 짙은 향기
그대는 아카시아 껌
*~꿈나무 형일이 껌 씹는 방법
걸음마 갓 배운 아기에겐
달착지근한 달고나 맛 같았어요
아릿하고 달콤해진 설근(舌根)
혓바늘 톡톡 긴장하며
춤추듯 움직이는 모습
젖살 오른 빨간 앵두 빛 볼두덩이가
턱의 장단에 맞추어
씰룩씰룩
행여 단물 흘릴세라 다문 입시울
오물조물.
/염원정- 시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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