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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와 연애편지

그날따라 엄마가 성적표를 내놓으라고 재촉했다. 일주일째 가방 속 깊숙이 처박아 둔 성적표였다.

엄마는 슈퍼나 미용실 같은 곳에서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아이를 둔 아줌마를 만났다. 그리고 벌써 오래전에 성적표가 나왔음은 물론이고, 자기 아들의 훌륭한 성적을 자랑하는 아줌마를 바라보며 엄마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만은 엄마에게 어떤 험한 말을 듣게 되더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등교 버스에서 나의 숙원을 푼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 넘게 바라만 보던 ´버스 소녀´에게 편지를 건네준 것이다. 버스 소녀를 처음 본 것은 주번을 하던 첫날이었다. 평소보다 한 시간은 일찍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비몽사몽간이었다.

이른 시간의 버스는 한산했고 나는 자리에 앉아 졸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 정거장쯤 지나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일이 일어났다. 내 앞에 아직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내 코는 향기로운 샴푸 향에 벌름거렸다. 교복을 입지 않은 걸로 봐서는 대학생이거나 직장인이었다. 어느 쪽이건 내겐 누님뻘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잠을 떨쳐버리고 향기에 취해 앞자리에 앉은 여자의 뒷모습만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나보다 한 정거장 앞에서 내린 여자의 앞모습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앳된 소녀의 얼굴이었다. 그 뒤부터 나는 줄곧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탔다. 그렇게 내 마음은 샴푸 향기로 가득 채워져 갔다.

원래 계획은 지각을 각오하고 버스 소녀가 내릴 때 함께 내려 말을 걸고, 자연스럽게 편지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버스 소녀가 내릴 때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하나? 허둥대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이 아니면 영영 전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가방 속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편지를 꺼내 버스 소녀에게 던져주다시피 주고 말았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지만, 내일 다시 만나면 뭔가 기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기만 했다.

그런데 엄마가 벌컥 문을 열고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너 연예 하냐? 이런 것까지 안 보여줘도 되니까 성적표나 줘.˝

나는 엄마 손에 들린 분홍색 편지지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분명 내가 밤새 쓴 편지였다. 봉투가 없어 규격 봉투에 넣었던 편지. 그럼 내가 버스 소녀에게 건네준 것은 성적표가 들어 있는 규격 봉투? 난 엄마 팔을 붙잡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매달려도 필요 없어! 성적표 내놔!˝/하이얀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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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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