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칫거리를 사러 시장에 갔다. 요즘은 대형 슈퍼마켓이 많지만 나는 늘 재래시장을 이용한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이 내놓고 파는 채소는 좀 비싸기는 해도 그분들의 손길이 닿았다고 생각하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덤을 잊지 않는 푸근한 인정에 마음도 흐뭇하다.
여느 때처럼 시장을 보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벤치에 힘없이 앉아 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보따리 하나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계셨는데, 버스가 하나둘 지나갔지만, 어느 버스에도 오르지 않으셨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하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다시 어디 가시느냐고 큰소리로 묻자 조그맣게 말씀하셨다. ˝갈 데 없어.˝
아 어쩐담. 모른 척하기엔 양심에 걸렸다. 그래서 할머니를 부축해 겨우 근처 파출소로 모셔 갔다.
할머니의 신원을 알기 위해 보따리를 살펴보려고 했지만, 할머니는 좀체 보따리를 내놓지 않으셨다. 그 보따리를 푸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옷 몇 가지뿐 아무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할머니를 파출소에 남겨두고 돌아와야 했다. 잠시 할머니를 모시고 나올 걸 하는 아쉬움을 안은 채.
며칠 뒤였다. ´평화의 마을´이라는 복지시설에서 전화가 왔다. 그 할머니가 그곳으로 옮겨졌는데, 날 보고 싶어 하신다는 거였다. 복지원 직원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할머니와의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나 모양이다.´ 부랴부랴 가 보니 할머니는 예전보다 깨끗하고 환한 얼굴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고마웠어. 고마웠어!˝ 하며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시는 할머니. 할머니의 따스함은 내 마음에 남아 있던 작은 티끌을 녹여 주기에 충분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그곳에 간다. 물질적인 도움은 아니지만 작은 웃음을 들고. /양미영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