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은 오직 등 뒤에서 봐야 보인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앞에서 보면 온통 얼굴만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얼굴만이 관심을 독차지한다. 위에서 보나 왼쪽에서 보나 오른쪽에서 보나 머리털은 얼굴 때문에 가장자리로 밀려나서 그저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는 사진틀 노릇이 고작이다.
등 뒤에서 보면 머리털은 전면적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사실 그것은 멋의 함정 중 하나다. 즉 머리를 잘 다듬는다는 것은 등 뒤에서 보는 모습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기희생적인 일면이 있다. 아주 멋진 머리 모양 - 어깨 위로 몽롱한 파도처럼 흘러내리며 물결치는 드넓은 머리숱, 혹은 살무사처럼 꼬인 채 단단하고 깜찍하게 늘어뜨린 땋은 머리 - 을 만들어 가지자면 예외적인 인내심이 필요할 테니 더욱 그렇다. 생-존 피르스의 시 :
< 당신이 내 머리를 매만지기를 끝내고 나면 나도 당신을 증오하기를 끝내겠어요. >
그것은 타자의 존재가 강요하는 가장 잔혹한 압제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세수하고 나 자신을 위하여 옷을 차려입는다. 나는 너를 위하여 머리를 매만진다.
반대로 승려, 병정 혹은 죄수의 면도로 밀어버린 두개골은 비인간적인 규율과 질서를 위하여 타인과의 자연적 사회적 관계를 단절했음을 명백히 드러낸다./ 미셀 투르니에 , 짧은 글 긴 침묵 (Michel Tournier , Petites Proses)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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