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 효자가 나기 쉽고 부자집에 효자가 나기 어렵다. 자랄 때 물질적으로 약간 어렵게 커야 긴장감 있고 노력하는 인생이 된다.
너무 가난하게 자란 사람은 커서 부자가 되어도 그 인격에 가난하던 때의 그림자가 남아 있어 움켜 지기만 하지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내가 만일 온천하를 소유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가난한 자일 것이다. 내 소유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물질은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잠깐 위탁하신 것, 그분의 허가 없이는 한 푼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이것이 청지기의 양심이다.
내가 만일 무일푼이 되더라도 나는 여전히 부자이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다 너희 것이다" (오전 3:21).
항상 가난하면서도 항상 풍족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애이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가난할 때 다급해지지 않고, 부자가 되어도 사치하지 않는다.
바울은 말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부유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 4:12).
몸은 가난하여도 마음은 온천하를 소유하듯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몸은 병들었어도 마음은 건강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은 감옥 안에 있어도 바울은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이다." (오후 6:10).
부란 좋은 하인이며, 아주 나쁜 여주인이다. 다룰 줄 모르는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자유롭고 고상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유에 대한 몰두이다.
지상에서의 우리 생활은 물질적이며 육체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물질주의와 육욕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오늘의 기독교가 사회에 지탄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욕심을 버리지 못함 때문이이라.
;소유에 대하여 언제나 청지기 양심을 잃지 않는 당신이길.......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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