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日遣興 (추일견흥) 가을의 소회
采山復釣水 (채산부조수) 산에서는 나무하고 물에서는 낚시하니
於世果何求 (어세과하구) 세상에 구하는 무엇이 있기나 하나?
身微不羇物 (신미불기물) 지위 낮아 세상일에 걸릴 것 없어
而寡恩與讐 (이과은여수) 은덕도 원한도 주고받은 것 적건마는
時復掩闈坐 (시부엄위좌) 때때로 문을 닫고 틀어박힌 채
攢眉懷百憂 (찬미회백우) 이맛살 찌푸리며 갖은 걱정을 하네.
家人問何故 (가인문하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오는 식구들에게
答云性悲秋 (답운성비추) 가을을 타노라고 둘러대었네.
/김윤식(金允植·1835~1922)
구한말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학자이며 문장가로 이름 높았던 김윤식이 지은 시다. 그가 1850년대 경기도 양평 한강 가에 살던 때였다. 공부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가진 것 없는 20대 젊은이라 세상을 향해 큰 욕심을 낸 일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도 덕을 베풀지도 않았다. 그런 평범한 젊은이에게도 가을은 온갖 걱정이 몰려오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을 걱정하는지 아무런 말이 없다. 문을 걸어 잠그고 걱정하는 그를 보고 식구들이 오히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속을 들킨 것 같아 가을을 타서 그렇다고 얼렁뚱땅 둘러댔으나 가슴 속 걱정이 물러난 것은 아니다. 저마다 가슴에 한 아름씩 걱정을 안고 사는 가을이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