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생

글 두레 2009. 8. 1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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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생의 [아르카디아에도 나(죽음)는 있다.]


     

       어떤 덕이든 덕은 결국 인간의 자기연단과 겸손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서양의 덕과 동양의 덕은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 겸손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덕이다. 인간이 지닌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한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도 한평생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이다. 권력도 영광도 풀잎 위의 이슬일 뿐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사람은 시간과 정력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겸손이 우리에게 주는 복이다. 그래서 덕을 주제로 한 서양의 역사화는 죽음 앞에서 겸손할 것을 권하는 그림이 많다. 

       다비드가 모범으로 삼았던 17세기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아르카디아에도 나(죽음)는 있다] 는 죽음의 불가항력적인 힘과 이것을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 겸손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림은 한 고대의 여인이 세 목동에게 석관 위에 새겨져 있는 글씨를 읽도록 권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석관에 쓰여 있는 글씨는 "아르카디아에도 나(죽음)는 있다"이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스인들의 이상향이다. 그런데 그곳에도 죽음은 있다. 저 평화롭고 배부르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낙원에도 쭉음이 있다면, 죽음을 무시하거나 기만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진정 어리석은 행위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죽음을 외면한다. 탐욕과 교만, 이기심과 증오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서양회화에 해골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서양 사람들이 엽기적인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죽음을 상기하라'는 뜻의 라틴어)'를 잊지않기 위해서 이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이 모든 덕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역사화가들이 이 주제를 즐겨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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