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금씩 떠납니다. 아름다운 시간과도 조금씩 이별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조금씩 이별을 합니다 . 때로는 미칠 만큼 가슴 가득히 사랑의 꽃을 피운 적도 있었고 때로는 그리움에 온밤을 새하얗게 지새운 적도 있었지만 오늘은 다 비우고 떠나렵니다.
이제, 오랜 고뇌 저편에 상실의 우울증으로 있던 나를 버려두고 빈 몸으로 먼 길을 떠나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옮길 때 마다 매달리며 쫓아오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살다 보면 꺾이고 부딪치고 채이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생의 무대, 그 처연한 시간 위에서 각본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로는 지독한 사랑이 나를 여러 번 살렸고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수없이 죽였습니다.
금새 찾아온 가을도 떠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구름 가듯이 가을이 내 곁을 빗겨 지나갑니다. 나도 이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한아름 터지게 가슴에 안아보고 떠나는 오늘을 보내고 새로운 내일을 맞으렵니다.
인생, 밀물처럼 찾아와서 창가에 미련 한 자락 남기고 서서히 멀어져 갑니다 /김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