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것도 없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 기름가게 심부름꾼 진중,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성실하고 순수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청년이다. 이런 그가 장사를 하며 자리를 잡고 손님을 끌고 미인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삶을 들여다보자.
송나라 휘 종 때 변량성에 신요금 이라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신요금은 양곡 상인의 외동딸로 유복하게 자라 일곱 살에 시문을 배우고, 열두 살에 서예와 거문고, 그림에 능해서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미모와 재능을 칭송하였다. 호사다마라 할까. 신요금이 열두 살 때 난 군이 변량성 일대를 휩쓸어 신씨의 일가도 난 군에게 재산을 모두 약탈당하고 피난을 가야 했다.
신요금은 가족들과 피난을 가다가 부모와 헤어지게 되었다. 부모를 찾으려고 헤매고 있는 어린 신요금을 복교라는 악인이 발견하여 데리고 다니다가 임안성에 있는 기루에 팔았다. 신요금은 졸지에 기녀가 되었으나 나이가 차면서 용모가 청아하고 재주가 출중하여 기루에 출입하는 부자와 귀공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한편 임안성에는 기름가게를 하는 주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진중이라는 소년을 그의 아버지로부터 사서 그를 심부름을 시키고 아들처럼 키우고 있었다. 주노인은 진중을 데리고 가게를 운영하면서 형권이라는 홀아비를 서기로 채용하고 청소와 빨래 등을 하는 난화라는 하녀까지 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진중은 열일곱 살이 되자 키가 훤칠한 장부가 되었다. 주노인은 진중과 난화를 혼인을 시키려고 하였으나 진중은 난화의 얼굴이 박색이어서 혼인을 거절했다. 난화는 진중에게 혼인을 거절당한 뒤 나이가 마흔이 된 홀아비 형권에게 접근하여 정분을 맺었다. 형권과 난화는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하여 주 노인에게 아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진중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난화는 매우 음탕한 여인으로 주 노인과도 정분을 맺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진중에게 앙심을 품었다. 하루는 난화가 주 노인에게 속삭였다.
“ 진중이 나를 겁탈하려고 했어요.”
“ 진중이 성실한데 그럴 리가 있나?”
주 노인은 처음에는 난화의 얘기를 믿지 않았다.
“ 진중이 돈을 빼돌리고 있습니다.”
형권도 난화와 함께 진중을 모함 했다.
“ 진중은 돈을 빼돌릴 사람이 아니다. 공연히 의심하지 마라.”
“ 진중은 밖에서 도박 까지 하고 있습니다.”
주 노인은 형권과 난화가 계속 모함을 하자 진중을 크게 야단쳤다. 진중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것이 형권과 난화의 모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중은 그들과 함께 있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하여 밖으로 돌면서 기름을 팔았다.
“ 진중은 기름을 팔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색시를 얻으려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 기름을 판돈도 제멋대로 낭비하고 있습니다.” 형권이 다시 진중을 모함했다.
“ 내가 너를 아들처럼 키웠는데 배신하다니!, 너는 이제 네 갈 데로 가거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반복되는 모함에 주 노인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주노인은 은자 석 냥을 주면서 떠나라고 말했다. 진중은 모함을 당해 쫓겨나는 것이 억울하여 한참 동안 울다가 그동안의 은혜에 감사한다며 주 노인에게 절하고 기름 집을 나왔다.
‘ 아아, 이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진중은 갈 곳이 없어 탄식을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탄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진중은 주 노인이 준 돈으로 기름통과 기름을 샀다. 사람들은 진중이 주 노인 집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모두 안타깝게 여기고 싸게 팔았다.
“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기름을 싸게 샀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싸게 팔아야 한다.”
진중은 좋은 기름만 골라 사서 이익을 적게 남기고 싸게 팔았다.
진중의 기름은 다른 사람들보다 값이 싸면서도 질이 좋았기 때문에 잘 팔렸다.
진중은 손님과 약속한 시간을 꼭 지켰고 기름도 후하게 달아주어 단골이 많이 생겨 장사가 잘되었다. 게다가 진중은 신중한 청년이라 매일 같이 이익이 남는데도 옷을 사 입거나 비싼 음식을 사 먹지 않고 절약하여 돈을 모았다.
‘ 진중은 성실한 청년이다.’
사람들은 모두 진중을 칭송하였다.
어느 날 진중은 기루에 기름을 팔러갔다가 미랑 이라는 기녀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절세미인으로 공자들이나 부자들이 다투어 미랑을 찾고 있었다. 진중은 그녀에게 반했으나 천한 기름장수의 신분으로 성안의 최고 미인인 미랑과 정분을 맺을 수가 없었다.
진중은 1년 동안 모은 돈 은자 열량을 가지고 기루의 주인을 찾아가 미랑과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기루의 주인은 진중의 성실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사코 말렸으나 진중이 간절히 원해서 할 수 없이 승낙하였다. 진중은 약속한 날이 되자 목욕을 깨끗하게고 새 옷을 갈아입고 기루로 찾아갔다.
미랑은 마침 출타하고 없었다. 진중은 깨끗한 방으로 안내되어 미랑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진중은 미랑의 방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흡족했다. 미랑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야 술에 취해 돌아왔다. 진중은 미랑을 보자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미랑은 눈이 부시게 예뻤다.
“ 아이고, 어디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고 온 거야?”
기루의 주인이 호들갑을 떨면서 술상을 들여왔다. 미랑은 자신의 방에 앉아있는 공자가 어디선가 본 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취기 때문에 진중을 알아볼 수 없었다. 진중은 그녀가 술에 취해 쓰러지자 이불을 덮어주었다, 미랑은 밤새 술기운에 부대끼며 힘들어했다. 진중은 환자를 간호하듯 그녀의 모든 수발을 들어주었다.
이튿날아침 술이 깬 미랑은 옆에서 고이 잠든 진중이 기름장수이고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진중이 은자 열 냥을 낸 것을 알고는 그것을 돌려주었다.
“ 당신은 신용을 잘 지키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어렵게 번 돈을 나와 같은 기루의 여자에게 쓰는 것은 옳지 않아요.”
미랑은 차를 대접하면서 말했다.
“ 돈을 돌려받을 수 없소, 나는 낭자와 하룻밤을 지낸 것만으로 만족하오.”
“ 하룻밤을 지냈다고 해도 당신은 나를 보살폈지 동침을 하지는 않았어요.”
“ 어쨌거나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오. 내가 돈이 많다면 기루의 주인에게 그대를 사서 혼인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서 그렇게 못하오.”
진중은 절세미인 미랑을 옆에서 하루 동안 지켜본 것으로 만족하고 열심히 일했다. 미랑은 열 냥이나 내고서 자신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취한 자신을 돌봐준 진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성안이 떠들썩할 정도로 콧대가 높은 미랑이었으나 사내들은 그녀를 돈으로 사려고만 했지 사람으로 대우해준 적이 없었다.
1년여가 지났다. 성안의 오공자가 미랑을 품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불한당 같은 오공자였기 때문에 미랑은 거절했다. 오공자는 마침내 기루에 쳐들어와 미랑을 강제로 납치하여 배로 끌고 갔다. 하지만, 미랑은 그가 노래를 부르라는 것도 거절하고 술을 따르라는 말도 듣지 않았다.
미랑이 저항하자 공자는 미랑에게 욕을 하면서 신발을 벗기고 걸어서 기루로 돌아가라고 했다.
날씨는 살을 엘 듯이 추웠다.
미랑은 신발도 없이 기루로 돌아갈 수 없어서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진중이 나타나 그녀를 위로하고 마차를 불러서 기루까지 데려다 주었다.
“ 저는 당신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저는 이런 생활을 그만두고 당신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미랑이 진중에게 말했다.
“ 나는 선녀처럼 아름다운 낭자와 함께 사는 것을 바라지만 낭자는 나처럼 천한 사람과 같이 살면 고생만 할 것입니다.”
“ 저는 기생입니다. 당신을 천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성실할 뿐 아니라 훌륭한 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디 저를 아내로 삼아주십시오.”
미랑이 눈물을 흐리면서 애원을 했다.
“ 당신은 기루에 많은 돈으로 묶여 있을 것입니다. 아마 천 냥은 족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 나는 기루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그러니 내 몸값은 내가 지급하겠습니다.”
미랑은 스스로 몸값을 지급하고 진중과 혼례를 올렸다.
진중은 절세미인을 얻고 그녀와 함께 장사를 하여 많은 부를 축적했다. 미랑은 어릴 때 헤어진 부모를 찾고 진중도 자신을 주 노인에게 판 아버지를 찾았다. 두 사람은 가족들과 함께 더욱 행복하게 살았다.
형권과 난화는 못된 짓만 하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악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흔한 이야기지만 한낱 기름장수에 지나지 않는 진중을 통해서 중국인의 상술을 엿볼 수 있다
진중이 모함을 받고 쫓겨나 은자 석 냥으로 장사를 시작하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성실함과 순수한 그의 품성이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싸면서도 질이 좋은 기름을 손님에게 팔았고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시간약속도 잘 지켰기 때문에 손님에게 믿음을 주어 장사를 잘할 수 있었다.
그가 진심으로 원했던 미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람들과 달리 그녀를 기루의 여인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진중은 비록 기름장수를 했지만 타고난 성실성과 상도를 지킴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받았고 그것이 미랑에게도 통했던 것이다.
/이수광 -고전에서 찾은 인생 역전기, 부자 열전, -학이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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