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溪白石絶紛囂.청계백석절분효 -
맑은 시내 하얀 돌 속세를 떠나 있고
高閣登臨倚半霄.고각등림의반소 -
높은 누각 올라 보니 반쯤 공중에 걸려 있네
老釋汲來欄外水.노석급래난외수 -
나이 든 스님 울 밖의 물 길어 오니
金剛秋色落吾瓢.금강추색낙오표 -
금강의 가을빛이 표주박에 담겼구나
조선 김도징(金道徵)이 금강산의 산영루(山影樓)를 읊은 시이다.
당 왕유(王維)의 ´산중(山中)´에 ˝청계에 하얀 돌 드러나고, 날씨 차가워져 단풍잎도 듬성듬성˝(淸溪白石出,天寒紅葉稀)이란 표현이 있고, 고려 이규보(李奎報)가 ´우물 속의 달(詠井中月)´을 읊은 시에 ˝산중의 스님이 달빛을 탐내 물병 가득 그 달빛 함께 길었네˝(山僧貪月色,汲一壹中)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우리는 금강산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 정서를 길어 올리고 있는 터다.
/이병한 < 서울대 명예 교수 > - 한국경제신문-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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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溪白石絶紛囂
맑은 계곡 흰 돌은 시끄러운 속세를 끊고
高閣登臨倚半霄
높은 누각에 오르니 하늘 중턱쯤이네.
老釋汲來欄外水
늙은이 난간 밖 물 길어 오셨는데
金剛秋色落吾瓢
금강산 가을 색 내 표주박에 담겼네.
淸溪白石은 自我를 비유한 듯 보인다.
맑은 계곡처럼 끊이지 않는 사색과 흰 돌처럼 그 흐름을 즐기는 것도 없다.
돌을 얘기하자니 詩人 송찬호의 詩 ‘돌’이 스쳐간다.
필사하면,
돌을 돌로 친다
단단한 것은 단단한 것에 의해 다스려질 수밖에 없다
어디서 튕겨 날아왔는지 한 여자를 쓰러뜨린 모진 돌멩이 하나
오래 쥐고 있으면 손 안의 돌도 따뜻해진다 돌 속으로 흘러가는 실핏줄들 돌에도 귀가 있던가, 출렁거리는 강물소리
다친 자들끼리 모여 강가 자갈밭의 돌 뒹구는 소리 둥글게 닮은 돌멩이 하나, 또 하나 오랜 세월 마주 보고 앉았다.
분효紛囂는 번잡하고 시끄러운 속세를 말한다.
효囂라는 한자를 보면 입 구자가 네 자다. 중앙에 머리 혈頁이 들어가는데 이 자는 머리 수首자의 고어다. 부수가 입 구口다. 입이 네 개나 되니 머리가 어지러울 만하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니 속세는 시끄러운 게다.
반소半霄는 하늘 중간쯤이다.
노석老釋은 늙은이로 얼버무리기에는 마뜩찮다. 釋은 釋迦를 줄인 말로 스님을 제유한다. 그러니까 늙은 스님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각행의 동사는 絶, 登, 汲, 落이며 효囂, 소霄, 표瓢가 압운을 이룬다.
이 詩를 읽으니 詩人 이성선의 ‘물을 건너다가’가 생각난다. 시인은 개울물을 건너다가 맑은 물 한 모금을 마신다. 나무도 황소도 호롱불도 여물 써는 소리까지 함께 마신다. 염소가 둑에서 내려와 궁둥이를 하늘로 뻗치고 물을 마시는데 나를 먹는 듯 그렇게 읽고 있다.
시인 김도징은 표주박에 든 물 한 모금에 금강산을 온통 들이킨 셈이다. 정말 그 물을 마신 것일까! 모를 일이다. 금강산이 시인을 마신 건 아닌지 말이다.
김도징(金道徴, 18세기 말~19세기 초)은 18세기 말경에 활동한 시인. 서민 출신의 시인으로서 금강산을 비롯하여 명승을 즐겨 유람하였고 자연풍경시들을 잘 지었다고 한다. 《풍요속선》에 시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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