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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죽지 않는 나무

산행 도중 눈발이 날려 길이 미끄럽다. 둥치가 잘려 나간 솔 밑동에 발을 지탱해 본다. 그런데 거죽만 멀쩡했지, 속살은 다 썩어 힘없이 무너진다. 그래도 발목을 버티게 해준 그것이 있었다.

헤쳐 보니 관솔이다. 코끝에 배어드는 떫고도 알싸한 송진 냄새, 향기 은은한 소나무 모양이다.

비록 용틀임하는 곡선미가 없을지라도 낙락장송으로 뻗은 가지와 올곧은 줄기는 송진의 결정(結晶이었다. 죽은 나무가 뿌리에서 환생한 듯이 제 모습을 잃지 않는 나무가 솔을 빼고는 또 있을까.

귀하다는 생각에 집으로 가져왔다. 책상 위에 두고 보니 고향 생각이 난다. 떠나간 사람들과 돌아올 기약 없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장승의 깊은 시간, 다복솔과 원추리꽃 사이로 장끼의 울음소리가 선명한 고향 빛깔이다.

그곳엔 소나무로 지은 집이 있다. 서울 장안의 구중궁궐만 소나무로 지은 게 아니다. 내가 태어난 시골의 초가도 잡목 하나 섞이지 않았으니 솔을 나무 중의 으뜸으로 친 까닭이다.

보릿고개에는 송기로 허기를 달래고, 부스럼이 나면 송진으로 살균을 시켰다. 송진 가루는 상처가 난 곳에 바르면 고름을 뽑아내고 치유하는 상비약이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송화로 다식을 만들고 솔방울을 따서 송실주(松實酒)를 빚으셨다. 그 송실주가 익어갈 때면 저승으로 가실 송관(松棺)을 미리 만들어 놓길 원하셨다.

그러고 보면 솔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뿌리는 함지박의 터진 부분이나 죽세공품들을 깁는 데 쓰인다. 목제품 갈라진 데도 솔뿌리 끈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래서 ˝정떨어져 헤어진 남녀를 꿰매는 것 말고 솔뿌리 끈으로 못 꿰매는 것은 없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뿐만 아니다. 떨어진 낙엽을 긁어다 불을 땐다. 솔가리 불땀이 제일 아니겠는가. 선방에서는 솔잎이 몸의 기를 맑게 해준다고 하여 상식(常食)으로 삼고 있으니 솔이 사람에게 베푼 덕은 실로 크기만 하다.

기실 소나무는 죽어서도 썩지 않은 풍채여서 운치가 있어 보인다. 하늘로 치솟는 기상은 속세에 물들지 않은 선비의 성품 그대로이다. 마치 세한도를 연상케 한다. 남의 눈을 개의치 않고 사제 간의 의리를 지킨 이상적에게 추사가 그려주었다는 세한도(歲寒圖).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속성이, 곧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승화되었던 그 정조에 비할 만큼 이 관솔이 귀하게 느껴진다.

어떤 사람은 숨이 멎기도 전에 그 이름이 잊힌다고 하였는데, 솔은 죽어서 관솔로 남아 불을 밝히고, 복령으로 맺어져 우리의 건강을 지켜준다. 하물며 호박으로 거듭나 호사를 누리게 하는 복리(福利)의 식물임에랴. 송진이 흙 속에 묻혀서 천년이 지나야 호박으로 변한다고 하였으니 솔의 생명력을 가히 닮을 만하다.

그리하여 나는 솔을 좋아한다. 그것도 송화가 피는 오월의 솔을. 왜냐하면 남쪽으로 피한(避寒)갔던 새들이 활개 젓는 훈풍의 계절인 까닭이다. 게다가 이때의 솔은 노란빛의 송화, 푸른 솔잎, 붉은 줄기의 삼원색을 다 갖추었다. 곧 천지인(天地人)으로서 하늘이요, 땅이요, 사람인 것이다. 이처럼 하늘에서 받은 본성을 정직하게 지키기까지 하였으니 솔은 너의 나무요, 나의 숨결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솔은 우리와 함께 고통을 앓아야 했을까. 일제에 의한 관솔의 수탈로, 친일파의 붓장난인 소나무 망국론으로 말이다. 까닭에 솔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잇는 그 이상의 영원한 나무다.

하여, 늦게나마 내 가슴에 청솔 한 그루를 기르고자 한다. 좋은 것, 오래된 것들이 업신여겨져 다 팽개친 세상이라 할지라도, 한 그루의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토양의 척박함도 가리지 않는 후덕한 솔이 심약한 내 마음과 기상을 푸르고 꿋꿋하게 지켜주리라는 믿음에서다.

/ 문형동-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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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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