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죽음

일반자료 2023. 4. 1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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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죽음

그녀는 쉰다섯 되던 해에 목 왼쪽 림프샘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과 상의한 끝에 그녀는 곧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불행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수술은 받은 지 일 년도 채 안 돼 이번에는 오른쪽 배에 암이 전이되었다. 암세포가 너무나 넓게 퍼져 있어 의사가 개복했다가 그대로 덮어버렸다.

˝앞으로 석 달을 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의사는 그녀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다. 막막했다. 스스로 고난을 참고 견디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녀였으나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억울한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죽고 나면 남편과 자식들이 차차 자기를 잊게 될 것이란 생각에 분한 마음도 일었다. 어떻게 하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었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다들 그러한 듯 그녀도 막막한 채로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방사선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가운데 머리카락은 빗을 갖다 대기만 해도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눈썹도 성글어져 얼굴을 곧 나환자의 몰골을 닮아 갔으며, 차차 신경마저 둔해져 걸음을 걷기가 불편해졌다. 그래도 그녀는 안성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일주일에 다섯 차례씩 오갔다.

그런데 의사가 선고한 시한부 기간이 석 달을 넘기고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여덟 달쯤 된 날이었다. 그녀는 그날도 치료를 받으러 가기 위해 서울 가는 버스에 발을 올려놓았다. 물론 머리카락이 다 빠져 가발을 쓴 채였다.

그런데 손으로 한쪽 다리를 들어 버스에 올려놓고, 다시 다른 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머리에서 가발이 툭 떨어졌다. 동시에 그녀의 흉한 맨머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얼른 가발을 주우려고 했으나 주울 수가 없었다.

˝할머니, 빨리 안 타고 뭐 하는 거예요? 에이, 참, 재수없게스리.˝
젊은 차장이 도와주기는커녕 짜증부터 부렸다.

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 킥킥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고 모멸스러웠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저열한 것이라면 차라리 죽고 싶었다. 당장 흔적도 없이 잦아들고 싶었다.

그 길로 그녀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길 밖으로 굴러떨어진 가발을 주워 들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어차피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일 당장 죽더라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인간답게 품위를 지키며 살고 싶었다.

그녀는 모든 생활을 병들기 전처럼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 희망을 만드는 일이었다. 의사는 그녀가 얼마 못 가 앉은뱅이가 되고 마침내 심한 고통 속에 숨질 것이라고 했으나,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기를 쓰고 일어나 울안의 남새밭을 가꾸었고, 책상에 꼿꼿이 앉아 책을 읽었다.

그것이야말로 옳은 투병이며 주어진 목숨에 대한 독실한 태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뒤 이태가 지났다. 그녀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누가 암이 어찌 되었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간단히 이렇게 대답한다.

˝모릅니다. 병원에 안 가니까 알 수가 없지요. 다리가 좀 저린 것 말고는 별로 자각 증세가 없습니다."

/ 작자 미상 -시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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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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